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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맹국들] (4) 일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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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맹국들] (4) 일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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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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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관계가 좋아야만 중국과 한국 등 다른 나라와도 양호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16일 오후 일본 교토(京都) 영빈관의 미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직설적인 ‘미국관’이 마이크를 타고 장내에 전해지자 일순 긴장이 감돌았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문제 등으로 엉망이 된 아시아 외교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는 새해 첫 기자회견에서도 “일본에 대한 공격이나 침략을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해주는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 밖에 없다”며 미국 중심의 외교를 거듭 강조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비 외교적 화법의 ‘미국 인식론’은 현재의 미일 동맹의 분위기를 그대로 짐작하게 한다.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긴밀해진 양국 동맹은 한마디로 미영 동맹에 버금가는 특급 동맹으로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비결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한 고이즈미식 ‘미국 올인’ 작전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친하게 지내며 “일본과 미국은 운명공동체”라고 까지 목청을 높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도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편중 외교’에는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고 있는 모습이다.

외교 문외한인 고이즈미 총리의 집권 초기 외교정책은 별 특색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ㆍ11 테러 후 그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미국을 지원하며 동맹강화를 꾀했다.

미군 등을 돕기 위한 테러대책 특별조치법(2001년 11월),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을 위한 ‘이라크 부흥 지원 특별조치법’(2003년), 미군에 대한 지원을 원활하게 하는 유사법제(2004년) 등을 만들었으며, 중국위협론과 미군과의 일체화를 선명히 드러낸 방위계획의 대강(大綱ㆍ2004년)도 새로 책정했다.

또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양국이 공동연구에 착수하고, 이를 위해 1967년 이후 견지해 온 ‘무기수출 3원칙’을 사실상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일 안전보장협의회(2+2)를 개설해 미일 동맹의 역할 분담을 강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주일미군기지 재편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미일 동맹의 강화를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새로운 미일 안보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9ㆍ11 테러 이후 고이즈미 총리가 펼친 안보 드라이브는 이전에는 생각하기도 힘들었던 엄청난 시도이자 변화였다.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일본 도서지방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침략을 가상하며 자위대와 미국 해병대가 사상 첫 합동 상륙작전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변화를 실감케 하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일 동맹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현실 인식은 “미일 동맹이 일본의 전후 번영을 유지,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냉전 종식이후 유일하게 전지구적인 패권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과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및 북한의 존재가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말 나타난 빌 클린턴_장쩌민(江澤民)의 ‘미중 접근’ 을 불안하게 지켜봐야 했던 경험도 미국을 확실한 동맹으로 붙잡아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한 것 같다.

일본에서 미일 동맹을 부정하는 것은 소수 의견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지나친 미국 편중 외교에는 적지 않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중국에 접근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종속적인 미일 동맹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언제든지 미국의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한 동맹체제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도요시타 나라히코(豊下楢彦) 리쓰메이칸(立命館)대 교수는 “일본은 미일 동맹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인식하는 자세로 대미 관계를 재정의하면서, 동시에 아시아에서 사이 좋은 친구 국가를 하나라도 더 늘려나가는 전략적인 현실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일본의 역할 확대' 찬반 팽팽

미일 동맹을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전개돼 왔다. 동맹의 파기를 주장하는 급진세력에서부터 아시아의 ‘미영 동맹’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까지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특히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열망하는 주류 세력들은 유엔 중심파와 미국 동맹파로 나뉘어 치열한 안보논쟁을 펼쳐왔다.

동맹파는 일본이 유명무실한 유엔이 아니라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에 의지해 지역적인 안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획득하기 위해 적극적인 헌법 해석이 바람직하고, 필요하다면 헌법 자체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미국 편중 외교’의 고집을 꺾지 않는 상황에서 동맹파는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표 논객인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교토(京都)대 교수는 “미일 동맹과 관련해 최근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중국의 위협이 누구의 눈으로 보더라도 명백해졌다는 것”이라며 “미일 동맹에 대한 관념적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편중, 아시아 경시’의 형태로 추진되고 있는 미일 동맹의 강화 움직임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전략적, 실용적인 외교의 결과로서 친미는 적절한 선택이지만 지금의 친미는 이데올로기처럼 변해 어떤 상황에도 미국에 붙겠다는 입장”이라고 비판했다.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전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일본이 안전하고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제관계를 균형있게 활용하는 외교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 미일 동맹 55년사

미일 동맹은 미국과 일본이 1951년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하면서 성립됐다. 구 안보조약으로 불리는 이 조약은 전후 일본 국가경영의 기본이었던 ‘경무장’과 ‘경제우선’을 결정지었다.

이후 미일 동맹은 국제정세와 미일 간의 역학관계를 반영하며 성격을 바꾸어 나갔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일본이 안보 부담을 분담해 가는 형식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이 교묘한 외교를 통해 자국 방위력의 증강과 군사적 역할의 확대를 달성한 동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60년 이뤄진 안보조약의 개정은 당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내각이 높은 수준의 자주성 회복과 대등한 협력자로서의 관계를 요구해 이뤄졌다. 군사적인 위협에는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방위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 안보조약은 ‘독립국’ 일본의 체제를 존중한 것이었지만 국내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 그 후 양국간에 더 이상 조약 개정은 없어 오늘날까지 미일 동맹의 근거로 통용되고 있다.

미국은 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에 대해 방위비 분담 요구를 강화했다. 일본은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미군에 대한 ‘배려 예산’을 책정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

96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가 발표한 미일 안보공동선언은 냉전 종식 후 변화한 상황에 부응하기 위한 안보조약의 ‘재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은 지리적 개념을 종래의 ‘극동’에서 ‘아시아ㆍ태평양’으로 확장하고, 미일 간 방위협력을 더욱 긴밀하게 규정한 것이 특징이다.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의 미일 동맹은 미군과 자위대의 일체화가 우려될 정도의 법 정비가 이뤄지는 등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일본은 전수방위에서 탈피해 미국과 함께 지역 안보를 담당하는 방향으로 매진하고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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