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급히 우회전하면 반대로 승객은 좌로 휙 쏠리게 마련이라고 쓴 것이 시인 황지우였던 것 같다. 1980년대 젊은이들은 전두환 파시즘 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심한 좌파 열병을 앓았다. 이념투쟁을 위해 대학생 신분을 감추고 공단에 취직하는 ‘위장 취업자’들이 속출하던 때였다. 이런 이념과잉 시대에 대한 황지우의 기지 넘치는 은유이자 옹호였다. 90년대 들어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세계적 냉전체제도 걷히기 시작했다. 한국 젊은이의 이데올로기 과잉도 균형을 찾아 갔다.
▦ 냉전시대가 마감돼도 이념까지 종언을 맞는 것은 아니다. 중남미에서는 근래 좌파정권이 폭 넓게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까지 7개국에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올해는 칠레에 이어 8개국 대통령선거에서 좌파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진보진영의 실패에 대한 반성 위에서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열린정책포럼’이 탄생했다. 언론은 기존의 ‘뉴 라이트’와 비견하여 이 단체를 ‘뉴 레프트’라고 부르고 있다. 막상 이 단체는 신자유주의적 국제환경과 관련해서 자기 방향이 ‘한국적 제3의 길’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다.
▦ 레프트건 뉴 레프트건, 한국에서는 ‘좌파’로 규정되는 것을 극구 꺼린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번 신년연설에서 현 정부에 대한 좌파정부 논란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의 정책이 분배위주이며 ‘좌파정부’라는 주장까지 나왔으나, 재정규모를 국내총생산(GDP)과 대비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스웨덴 등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이고, 복지예산의 비율은 더 적다고 한다.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객관적 주장이다.
▦ ‘구미 국가들처럼 좌파정부이면 또 어떤가’ 할 법도 하건만, 굳이 사리를 밝히려는 바탕에는 보수세력의 색깔론을 경계하는 의도가 읽힌다. 지난해 강영훈 이회창 전 국무총리 등은 ‘좌경화가 대한민국의 안방과 심장을 위협하고 있다’며,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규정하는 시국선언문을 두 차례나 발표했다. ‘뉴 라이트’와 ‘뉴 레프트’가 이런 냉전고착적 사고에 유연성을 주기만 해도 좋겠다. 한국정치의 입춘은 아직 멀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날아야 하는데, 영하 40도면 하늘을 날던 새들도 떨어진다고 한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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