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세정의 신뢰성보다 타당성을 주시해야 할 시점이라며 기존의 정기 세부조사에 대해 표본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개념과 취지에 대한 설명은 복잡하지만 한마디로 반도체 전자 자동차 등 호황업종과 건설 부동산 등 전통적 문제업종의 대기업 116곳을 무더기로 세무 조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금 탈루가 확인되면 해당기업은 물론 동일 업종 및 유사 탈루 개연성이 있는 다른 기업들도 정기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시켜 수시로 조사를 하게 된다.
국세청은 이번 표본 조사기법을 제시하여 "세무당국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 만큼 이젠 탈루현의 정도에 따라 조사를 집중하는 세무조사의 타당성을 중시할 때"라고 밝혔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세정의 형평성과 보편성 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세청은 "3월 말 법인세 신고 및 납부를 앞둔 12월 결산 기업들이 가결산 과정에서 소득을 임의조정 하는 탈세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뜻도 크다"며 이번 조사의 예방적 기능도 강조했다.
하지만 국세청의 이번 조치는 그 의도와 발표시기에서 석연치 않으며, 대상 기업들은 갑작스런 공세적 세정(稅政)에 불안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해소 재원마련의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자마자 나온 조치라는 점도 공교롭다. 세금 탈루 혐의가 있는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이를 어렵게 포장해 이벤트 하듯 공표했으니 오해를 부를 만도 하다.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워 일자리 창출의 선순환을 이뤄야 할 시기라는 측면에서도 큰 부작용이 예상된다. 2003년 이후 매년 5조원 안팎의 세수부족에 허덕여 온 정부로서는 연초부터 징세 드라이브 유혹에 빠지겠지만 이로 인해 재계의 의욕이 꺾인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역효과를 낼 우려도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시행과정에서 세심하고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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