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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주한 미군 한반도外 투입'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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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주한 미군 한반도外 투입' 합의

입력
2006.01.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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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모월 모일. 갑작스레 중국과 대만 관계가 악화하더니 중국이 대만을 향해 포문을 연다. 양안(兩岸)관계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미군은 이미 대만 해역에 출동시킨 미7함대 소속의 항공모함 전투단에 발포 명령을 내린다.

인민해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서다. 이어 대만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 오키나와(沖繩)에 주둔하고 있는 18전투비행단 투입을 결정하고 미 해병원정군에도 출동대기령을 내린다.

중국이 공격용 핵잠수함과 전략미사일까지 동원해 미군을 위협하자 미 태평양사령부는 급기야 군산과 오산에 주둔하고 있는 미7공군과 주한 미2사단 지상군 병력도 투입한다는 내용을 한국 정부에 통보한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미군의 발진기지로 사용됐다며 발끈하면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대한 타격 명령을 내려 순식간에 동북아 전체가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동북아 안보의 핵이 된 주한미군

현실화해선 안될 가상에 불과하지만 이는 2004년 한반도에 주둔하던 미2사단 병력 일부가 이라크 전장으로 빠져나간 뒤 불거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한반도 이외 지역으로의 투입) 논란’의 배경이 된 시나리오다.

참여정부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해외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주한미군이 폭발성 강한 동북아 분쟁에 휘말릴 경우 위의 시나리오처럼 한반도의 안보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일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한다고 합의함에 따라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심각한 안보 현안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변화를 동북아 분쟁 개입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데는 아직 동의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중국은 미국이 양안관계에 개입하는 기미만 보여도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미국이 한국 영토를 출격 기지로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의 개입에 대해 틈만 나면 경고음를 울리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산둥(山東)반도에서 러시아와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임으로써 한미일 3각 동맹을 겨냥한 무력 시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주한미군을 동북아뿐 아니라 중동 분쟁에까지 투입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지난해 미래형 전투사단(UEx)으로 변모시킨 미2사단이 대표적인 사례.

미2사단 UEx는 군단과 사단의 중간 규모인 지휘 부대로 보병 항공 기갑 등 화력과 기동성이 한층 증강된 실제 전투부대(UA)를 지휘하게 된다. 개편된 미2사단에 배속된 중무장 전투여단의 경우 전차ㆍ포병ㆍ정보부대를 통합해 이전의 사단급 규모의 화력을 보유하게 됐다.

미2사단을 작지만 강한 신속기동군으로 바꾼 것은 한반도 방어군으로만 활용되던 주한미군의 기능 및 전략 변화로 읽힌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수시로 “주한미군은 더 이상 단일목적(한반도에서의 대북 억지력)으로 한반도에 주둔하지 않는다”고 강조, 이 같은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우리 군은 “대수롭지 않은 변화”

군 당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몰고 올 파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군 고위관계자는 “전략적 유연성은 전세계 분쟁에 효율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미군의 개념”이라며 “주한미군에 특정 임무(동북아분쟁 개입 등)가 부여되는 상황과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의 전쟁은 동맹국 대 동맹국이 싸우는 과거의 전쟁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의 전쟁에 한반도가 영향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에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함으로써 한미 군사동맹에는 상당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의 작전에 투입시킴으로써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지휘권 범위가 확대된다. 이는 한반도에 국한시킨 연합지휘체계의 의미가 훼손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미연합지휘체계를 독자적인 지휘체계로 분리하고 상호 협조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미 양국은 연합지휘체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논의하는 중이어서 한미 군사동맹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 한국,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왜 합의했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 양국의 합의에서 가장 궁금한 대목은 우리 정부가 무슨 이유로 이에 동의했느냐 이다. 그 동안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할 경우 한반도가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걱정, 사실상 동의하지 않았다. 양국이 지난해 2월 회의체를 구성, 12차례나 만났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을 정도로 정부 입장은 완강했다.

특히 중국과 대만 분쟁이 생길 경우 주한 미군이 투입된다면, 한반도도 그 분쟁의 여파에 휩쓸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정부의 최대 우려였다. 따라서 정부가 오랫동안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온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합의했다는 사실은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주한미군 이동 시 한국과 사전 협의하기로 했다”는 논리로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해주는 대신 미국은 “한국이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존중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즉 양국의 입장이 절충된 합의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형식은 절충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미국의 입장에 한 발 끌려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우리 의사에 반해 주한미군은 동북아 분쟁지로 갈 수 없다는 대전제가 있었지만, 이제 사전 협의를 전제로 이동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런 합의를 한 배경에는 미래에 발생할 분쟁에 대한 우려보다는 당장 한미동맹의 공고화가 더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과의 공동 보조는 필수적인데, 최근 미국 내부의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우리 정부의 자세 전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난관에 봉착한 6자회담을 풀기 위해서 합의에 응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미국은 전 세계적인 군사재편 계획을 위해 동맹국인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고, 6자회담을 풀어야 하는 한국 정부로선 한미간 공조를 위해 이견을 보이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사전에 조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우리 정부가 타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전략적 유연성의 전면 허용은 우리나라가 양안사태 등 지역분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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