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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영화 '천년학' 제작 재개하는 임권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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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영화 '천년학' 제작 재개하는 임권택 감독

입력
2006.01.2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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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선지 44년. 99편의 작품을 선보인 임권택(70) 감독이지만 100번째 연출작 ‘천년학’을 준비하면서 뜻하지 않게 영화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초 80억원대로 계획했던 제작비가 40억원대로 크게 축소됐는데도 투자자들은 선뜻 내켜하지 않았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돈줄을 자임했던 주요 투자자는 발을 뺐고, 임 감독과 함께 2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한 태흥영화사(대표 이태원)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았다.

‘천년학’은 그렇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날개를 접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영화계에서는 걱정과 우려가 교차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임 감독은 비상을 준비할 새 둥지를 찾았다. 영화 전문 월간지 키노를 발행했던 김종문 대표가 이끄는 제작사 ‘키노투’가 ‘천년학’의 힘찬 날갯짓을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돈 때문에 제작이 중단된 것은 처음이라 정신적 충격이 컸지요. 영화계 안팎에서 ‘이대로 넘어지면 안된다’고 걱정들을 많이 해준 덕분에 새 투자자를 빨리 찾았습니다.”

‘천년학’은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가 원작이다. ‘서편제’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13년 만에 풀어놓는다. ‘서편제’가 빛으로 판소리를 널리 알리려 했다면 ‘천년학’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소리꾼 남매 송화와 동호의 사랑 이야기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나 가능한 장면이 있어 그 동안 미루어두었던 작품이다.

1950년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어수선했던 시대상을 헤집을 생각은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매우 슬픈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세속에서는 맺을 수 없는, 그러나 소리로 결실을 맺은 그런 사랑을 찍고 싶어요. 소리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은 몇 군데 안 될 겁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업적인데도 100번째 영화라는데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의 초창기 작품들이 단순히 돈을 벌자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우리네 삶과는 무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TV에서 흘러간 한국 영화를 걸작이라며 방영하더라고요. 끝까지 무슨 영화인가 궁금해 하며 봤는데, 마지막에 제 이름이 감독으로 올라가더군요. 그만큼 초기에 만든 영화를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나 봐요. 당시에는 열심히 만들었겠지만….”

해외 영화제 수상에 대한 욕심도 없다. 우리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리자는 생각 뿐이다. “남들이 안 하니 제가 해야죠. 서구인들이 제 영화를 통해 생경하기 그지 없는 우리 전통문화를 받아들일 때 보람을 느껴요. 계속 그런 역할을 내 영화가 해야겠구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대물은 젊은 감독들이 잘해내고 있으니까요.”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는 여느 때보다 굳다. “해외에서도 계속 관심을 표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임 감독에게 제작 중단의 시련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영화 인생을 살고 있는지 되새길 수 있었고, 훨씬 더 여유롭게 작품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은 매화가 흐드러질 무렵인 3월 중순 전남 광양 땅에서 시작한다. 모진 혹한을 견뎌낸 노 대가의 마음은 벌써 봄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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