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으로 끌려간 아프리카 노예, 이스라엘 건국으로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 여기에 나라를 뺏기고 일본, 만주로 흘러 들어간 일제 시대의 우리 선조들. 이들 디아스포라가 눈물을 머금은 채 제 땅을 뒤로 한 것은 노예 무역, 식민 지배, 전쟁, 자본주의의 확대 때문이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원래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흩어져 사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켰던 말. 하지만 오늘날은 자기가 속했던 공동체를 떠나도록 강요된 사람 모두가 해당한다.
‘디아스포라 기행’은 일본 도쿄 경제대 교수 서경식이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포착한 여행 에세이이다. 할아버지가 건설 노동자로 일본에 건너 왔고 저자 역시 교토에서 자랐다.
그를 기다린 것은 차별과 억압이었고 그는 형들과 함께 저항적 민족 의식을 키웠다. 하지만 한국으로 유학 온 두 형 승, 준식이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각각 19년, 17년씩의 옥고를 치르고 저자 역시 오랜 세월 방황했다. 그의 글이 소수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진지하게 짚어내고 있는 것은 그 같은 내력 덕일 것이다.
‘디아스포라 기행’은 그가 런던, 잘츠부르크, 카젤, 브뤼셀 그리고 광주 등을 여행하면서 남긴 기록이다. 정착했든, 잠시 떠돌았든, 아니면 묻혔든, 그 곳과 인연을 맺은 예술인과 그들의 작품을 디아스포라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저자는 광주 비엔날레에서 재일 조선인 1세 시인 김하일을 떠올린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김하일은 한센병이 발병, 요양원에 격리돼 고독한 삶을 살았다.
1947년 외국인 등록증이 발급돼 지문 날인의 의무가 부과됐지만 손가락이 없었던 그는 지문을 찍을 수 없었다. 끝내는 손가락도, 시력도 모두 잃은 김하일은 혀로 일본어와 조선어 점자를 익히고 그렇게 배운 점자로 조선의 역사를 읽었다. 점자를 익히느라 그의 혀는 피투성이가 됐다.
런던 호텔방에서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분쟁 보도를 접했을 때 생각난 작가가 프레모 레비였다. 유대계 이탈리아 작가인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아 나치의 폭력성을 고발했으며, 유대 민족의 피난처로서 이스라엘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호전적인 기운이 넘치고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목격하면서 그는 자살하고 만다.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에서는 유대계 작사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삶을 되돌아 본다. 휴머니즘과 자유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는 나치가 침략하자 절망감을 안고 쫓기듯 브라질로 망명했다. 1942년 리우카니발이 한창이던 망명지에서 그는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자살한다.
책에는 그 밖에 윤이상, 조양규 등 한인 디아스포라를 비롯해 레지스탕스였던 장 아메리, 이란계 미국 아티스트 시린 네샤트, 영국에서 활동하는 우간다 태생의 인도계 예술가 자리나 빔지 등의 다아스포라적 삶도 담겨져 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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