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살씩 나이 차이가 있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교사는 그런 수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며 그런 사실을 안다면 학부모는 가만히 있을까? 생각하기 쉽지 않지만 이런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물리적인 나이는 같지만 학업 능력이 두세 살씩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 동일한 수업을 듣고 있다.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
얼마전 EBS의 교육특집 프로그램에서 서울 강남·북 3개 고교의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능력 평가시험을 치뤘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두 학교에서는 절반이 넘는 학생이 고교 1학년 기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한 학교에서는 중학교 1, 2학년 수준인 학생들도 37%나 됐다.
다른 연구나 일선 교사도 비슷한 결과를 말하고 있고,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학능력 편차가 크지만 일부에서는 평준화만을 외친다. 개인의 학습능력까지 평준화의 틀 속에서 재단하려는 사람들에게 과연 평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헌법 제31조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는 교육의 기회는 균등하지만 교육 내용 자체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교육기본법 제3조(학습권)에도 잘 나와 있다.
최근 사학법 파동으로 ‘학습권’이 여론에 자주 오르내렸지만 이는 참된 의미의 학습권이라고 볼 수 없다. 학습권은 학생 각자가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을 권리이다. 일부 사학이 폐교하지 않거나 투명한 경영을 한다고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제7차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은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강조하고 있고, 교육부는 2008학년도부터 중고교의 영어·수학 과목에 대해 수준별 이동수업을 전면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학생들의 잠재능력 발휘를 극대화시키고 평준화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교조는 “수준별 이동수업은 단순히 교과목 점수에 의해 학생의 등급을 매기고 이를 기준으로 차별 교육을 시키려는 불평등한 교육”이라며 “이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면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상급 단계에 속하게 하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게 된다”고 주장하며 수준별 수업 거부운동을 선언했다.
수준별 이동수업의 핵심은 과목 선택권이 학생에게 있으며,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준별 수업을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사실상 학년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선수(先修) 과목이 없으면 어느 학년에서라도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고 주어진 학점을 채우면 졸업이 가능하다. 우수반 학생에게는 가산점이 주어져 보통반의 A와 우수반의 B는 같은 학점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교과과정과 시험문제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우수반 학생은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수준별 수업마저 반대 실정
우리 교육현장에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면 학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상급 단계에 속하게 하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 차라리 보통반에 남아 있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준별 수업 거부운동을 하는 전교조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을 강요하며,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나와 있는 적성과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불평등한 교육 타파를 주장하지만 사실상 교육의 불평등을 강요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 문제도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김민숙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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