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 여행 - 강원도 섶다리 여행 - 영월·정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 여행 - 강원도 섶다리 여행 - 영월·정선

입력
2006.01.20 09:05
0 0

강원 영월과 정선에는 유독 오지 마을이 많다. 굽이치는 강줄기가 이 마을 저 마을 지나면서 좀처럼 길을 내주지 않은 까닭이다. 문명의 혜택은 이 곳에도 통하는 말일까, 싶다.

거기 사람들이 자연을 재료 삼아 길을 냈으니 그것이 섶다리이다. 섶다리는 Y자 모양의 나무를 뒤집어 다릿발을 세우고, 통나무를 기둥삼아 낙엽송으로 만든 서까래에 소나무 가지와 흙을 다져 만든 간이 나무 다리이다. 나무와 흙 그게 전부이다. 못 하나 사용되지 않은 원초적 다리.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섶다리가 처음 놓인 곳은 영월의 주천강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강폭이 좁고, 깊지 않아 높이 1m 남짓한 섶다리를 놓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섶다리는 마을 화합의 상징이다. 해마다 11~12월이면 동네 청년들이 모여 다리를 놓는 풍경은 바로 협동의 현장었다. 흔한 재료에 제작 방법도 간단하니, 마을 장정 20~30명이 사흘이면 다리 하나를 만들어 냈다. 자연에 철저히 순응하는 인공물의 사용 기간은 길지 않다. 이듬해 여름 장마에 쓸려가면 다시 겨울을 기다렸다가 섶다리를 만드는 식이다.

물론 옛날 이야기이다.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이 행사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소중한 옛 것이 시나브로 없어진 것이다. 하기사 강 곳곳을 가로지른 콘크리트 다리들이 섶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요즘, 굳이 힘을 들일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그 섶다리가 부활의 바람을 타고 있다. 4~5년전 관광용으로 옛 풍물이 아쉬웠던 것이다.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청년들이 마을앞 강가에 길이 50m남짓한 섶다리를 놓고, 벌인 축제였다.

1㎞ 떨어진 강 상류에 번듯한 콘크리트 다리가 있지만 부활한 전통 다리는 도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푹신한 흙길을 걸을 때 오는 편안함과 운치, 여기에 TV 매체의 힘까지 가세했다. 드라마 ‘장길산’에 섶다리가 자주 노출된 것이다.

애초 관광용으로 출발한 섭다리에의 수요는 뒤를 이었다. 이번에는 섶다리의 종가를 자부하는 주천면 주천리 주민들이 주천강에 섶다리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이름하여 ‘쌍섶다리’를 들고 나왔다. 마침 단종의 죽음과 관련한 쌍섶다리의 애틋한 사연이 더해지면서 관광객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뺏기고 영월로 유배온 단종이 1457년 사약을 받고 승하하자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그 감정은 200년 넘게 지속됐다. 1699년 숙종이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강원관찰사에게 단종묘를 참배토록 했으나, 그들이 타고온 사인교(四人轎)로는 섶다리를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민들이 양쪽에서 별도의 섶다리 놓기 경쟁을 벌인 것이 유래가 됐다. 힘든 노동이지만 마음은 즐거웠을 터이니, 노랫가락 절로 났을 법 하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쌍섶다리 민요이다.

“장릉 알현 귀한 길의/ 강원 감사 그 행차가/ 에헤라 쌍다리요/ 편안히 건너도록/ 감사다리 놓아주세”로 시작되던 민요 가락은 “다리발을 헛박아서 무자식을 한탄한다”는 신세 타령으로 마무리된다.

풍부한 이야기로 따진다면 정선의 아우라지를 따를 곳 없다. 아우라지는 골지천과 송천 두 물이 어우러진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비슷한 의미의 두물머리가 양수리(兩水里)로, 아우내가 병천(竝川)으로 변한 것과는 달리 여전히 이름에서 풍기는 운치가 맛깔스럽다.

폭 50m안팎의 조그만 강이지만 남한강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뱃길이라 꽤나 북적대는 나룻터였다. 수많은 뱃사공이 생계를 이었지만, 사실 500㎞가량 되는 길을 왕복하려면 몇 달이 걸릴 지 모르는 상황. 떠난 님을 기다리다 지친 아낙네의 한 숨이 어지간했으리라. 이런 처지에서 애절한 마음으로 풀어낸 노래가 그 유명한 ‘정선 아리랑’이다.

“담배 불이야 번득번득에 임 오시나 했더니/ 그 놈의 개똥불이야 나를 또 속였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왜 모르나…” 구절구절 님을 그리는 사연이 풍자와 해학으로 녹아 있다.

아우라지의 섶다리는 뱃사공 낭군의 애틋한 사연의 주인공인 아우라지 처녀상, 그리고 정자가 있는 언덕과 정선 꼬마열차가 출발하는 아우라지 지역 등 두 곳을 ‘ㅅ’자 형태로 잇는다. 섶다리가 없는 여름에는 줄배가 그 역할을 맡는다.

수많은 사연을 담은 곳이라서 그럴까. 강가의 돌들도 만만치 않은 울림을 간직하고 있다. 이 곳에서 15년간 수석을 채집한 전옥매(71)씨가 운영하는 옥산장여관(033-562-0739)에 들면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1~10까지 아라비아 숫자가 새겨진 돌이 있는가 하면, 12간지의 동물들이 돌 속에 오롯이 담겨있기도 하다. 사람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보는 듯한 연작도 있다. 유명세는 확대 재생산하는 법.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 이영애가 이 여관 205호에 투숙했고, 욘사마 배용준이 드라마 ‘맨발의 청춘’ 촬영시 306호에 기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庸?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우라지의 또 다른 즐길 거리는 정선 꼬마 열차이다. 45명을 태울 수 있는 이 관광 열차는 아우라지역 – 증산역 간 38㎞를 매일 세 차례 왕복 운행한다. 소요 시간 50분.

투박함과 소박함으로 똘똘 뭉친 섶다리이지만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있기에 정월을 코앞에 둔 지금,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033-370-2542,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033-560-2361

영월ㆍ정선=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