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것이다. 아무리 정확히 구사하려 해도 엄밀한 의미에서 실재를 말할 수는 없다. 영어의 예를 들면 영어 단어는 약 50만~60만 개가 있지만 이에 비해 설명하고 묘사해야 할 개별 현상, 경험, 관계들은 수백 만, 수천 만 가지에 달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휘는 그보다 훨씬 적다. 한 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전화대화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5,000개, 소설에서는 1만 개 정도의 단어가 사용된다고 한다.
언어의 사용에는 불가피하게 일정한 추상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언어학자들은 이를 언어의 유용한 특성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말의 추상정도가 높아질 때, 말과 실재의 상응성은 그 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서 바로 이 같은 말의 추상성의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과제라고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에도 강조했던 같은 과제를 되풀이한 것으로 내용에서 더 나간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원인에 대한 시각, 인과관계의 선후를 놓고 당장 정부책임론을 드는 반박이 나오고, 해결을 위한 정책방안 역시 여전히 모호한 상태에 머물고 있어 논란을 만든다.
때로는 문제를 추출하고 제시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극화 문제를 이슈화하는 대통령의 새해 연설이 이 수준에 그치고 만다면 허전해도 한참 허전하다. 프라임 타임대에 TV로 생중계된 이 연설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이나 마찬가지다. 브리핑으로 친다면 허술한 브리핑이라고 판정해야겠다.
재정 확보를 위한 근본 해결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을 두고 조세부담률 인상을 추진한다는 분석 정도가 나올 뿐이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화급하다는 과제에 정책대안 제시도, 설득 노력도 생략된 대통령의 연설은 그래서 ‘구호’ 수준이라는 비판으로 격하되고 만다. 만일 대선 후보 토론 석상에서 이런 문제가 제기됐다면 수준미달이라고 심한 닦달을 당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연설에는 전과 달리 앞으로는 미래 과제 해결에 주력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30년 후를 대비한 대국민 호소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 와서 ‘과제는 이것이다’라는 유의 연설은 이미 양극화의 병에 깊이 신음하는 이 사회와 국민들에게 말과 실재 사이에 있어야 할 최소한의 상응성마저 조롱하는 것으로 비친다.
말의 추상성을 그나마라도 줄이려면 ‘이 과제는 이렇게 풀려 한다’거나, ‘내가 가진 이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지지해 달라’는 비장한 설득의지라도 보였어야 한다. 지도자의 진정한 고민이 전달되지 않고 국민의 동의를 획득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3년간 청산과 단절, 전투적 정치에 익숙해 있던 국민들에게 추상적인 미래를 말하는 데 주력하는 노 대통령이 엉뚱해 보일 수도 있다. 어떤 분석들은 노 대통령이 개각파동 와중에 언급한 ‘역발상’의 정치로 전환했다고도 한다.
노 대통령은 “나는 역설적 전술, 역발상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고 했다지만 이번의 역발상은 허전하기만 하다. 먼 길을 돌아 이제라도 경제와 민생문제에 집중하려는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1년 여라고 해야 할 대통령이 30년 정책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 가능한지를 되물어야 할 만큼 연설은 매우 추상적이다. 노 대통령이 제시할 정책 방안들이 구체적 논쟁 단계로 들어갈 경우는 또 어떨까.
올해와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정책논쟁이 선거와 물려 갈 때 그 정치성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난한 과제라서 신중한 정책 과정을 밟는 것인지, 다른 암수나 복선을 살펴야 하는 것인지 연설의 ‘전략적 모호성’ 쪽으로 자꾸 생각이 미친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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