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성형외과 의사 정모(44)씨와 부동산업자 김모(36)씨 등은 평소 알고 지내던 치과의사 박모(44)씨의 손에 이끌려 중국 칭다오(靑島)로 주말 골프관광을 떠났다.
칭다오 공항에서 이들을 맞은 것은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신모(45)씨. 박씨의 절친한 고향친구인 그는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며 관광과 골프 안내를 도맡았다.
정씨 일행은 저녁이 되자 신씨가 운영하는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이 몇잔 오가며 취기가 돌자 신씨가 피로회복제라며 넌지시 정체불명의 백색가루를 건넸다. 모두 오랜만에 여유롭게 골프를 쳐 피곤했던 차에 의심 없이 가루를 술에 타 마셨다.
몽롱한 기분이 들며 알 듯 모를 듯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한번 맛 본 마약의 짜릿한 기억을 잊을 수 없었던 이들은 이후 수시로 중국을 드나들었다.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한 요즘 주말을 이용해 칭다오의 골프장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평균 500~600명선. 이처럼 관광객이 늘어나자 중국 마약조직이 의사 등 부유층 한국인을 타깃으로 삼아 적극적인 마약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마약 브로커들은 중개 역할을 맡아 관광객들을 속칭 ‘19홀’로 불리는 술집으로 유인한다. 신씨도 인테리어사업과 유흥업소를 하는 사업가로 행세했지만 사실상 알선책 역할을 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칭다오뿐 아니라 상하이(上海)나 동남아에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마약 유흥업소가 수십 개나 성업 중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이들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 때문. 히로뽕 1g 가격은 15만~20만원 수준으로 국내 유통가격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또 마약값을 술값에 포함시켜 거부감을 없앤다.
이같이 범죄가 성행하고 있지만 적발은 쉽지 않다. 국정원 관계자는 “보통 알선 조직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실체 파악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19일 중국 칭다오와 상하이 등에서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한 혐의(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로 의사 정모, 치과의사 박모, 전 국회의원의 아들 김모씨 등 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들에게 마약을 알선한 현지 브로커 신씨를 쫓고 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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