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이월 초하루는 바람의 신 영등할미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날 떡을 준비하고 빌었다. 영등할미에게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날, 바람을 일으켜 천연두를 멀리 날려 보내달라고.
오뉴월 내리는 장마는 개똥장마라고 불렀다. 개똥은 천하고 흔한 것이지만 좋은 거름이 되기 때문에 농사에 도움을 주는데, 오뉴월 장마 역시 농사에 좋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계절, 기후와 관련한 풍속과 이야기가 많았다. 춘하추동의 구분이 뚜렷한데다 농경 민족으로서 농사를 지으려면 계절의 변화에 잘 적응해야 했는데, 다양한 형태의 세시 풍속은 그 같은 요구에 맞춰 자연에 순응하는 집단적인 행사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한국세시풍속사전’ 봄, 여름 편을 냈다. 우리 전래의 봄, 여름 풍속을 종합한 민속 사전이다. 민속박물관은 이에 앞서 2004년 정월 편을 발간했으며 금년 말까지 나머지 가을, 겨울, 부록 및 색인 편을 내 전 6권을 완간할 계획이다.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우리 민족의 생활 주기에 맞춰 과거의 풍속을 중심으로 엮었지만 최근 새롭게 만든 풍속도 제법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 봄 편에는,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적 특성상 생업, 기후, 세시 놀이 등에 대한 것이 많다.
영등할미가 내려오는 이월 초하루를 농가에서는 머슴날로 불렀다. 겨우내 쉬었던 머슴들을 다시 불러내, 일년 농사를 부탁하고 미리 위로하는 뜻에서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고 하루를 즐기도록 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일꾼날, 하리아드랫날, 나이떡날 등으로 불렀다. 여자 노비에게도 송편을 빚어 나눠주고 하루를 쉬게 했기 때문에 여종날이라고도 했다.
‘이월 바람에 검은 쇠뿔이 오그라진다’는 제주 속담은 기후와 관련한 것이다. 이월의 바람이 동지섣달의 그것 못지 않게 차가워 검은 암소의 단단한 뿔이 굽을 정도라는 뜻이다.
연초에도 그렇지만 한해 수확을 전망하는 것도 이 즈음이다. 경남 욕지도 어민들은 음력 삼월 바닷가 바위에 담치(홍합)가 많이 붙어 있으면 그 해 흉년이 들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반대로 부산 금정 사람들은 풍년이 들 것이라며 좋아했다.
민속놀이가 많은 단오를 경북에서는 며느리날이라고 했다. 집안 일에 매인 며느리가 이 날만큼은 하루 종일 그네를 뛰며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친정에 온 딸과 며느리가 한 팀을 이뤄 그네뛰기 시합도 했다. 강원 강릉에서 과부 시집 가는 날이라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가 하면 경기 동두천에서는 미나리가 단오 무렵 억세진다고 해서 미나리환갑날이라고 불렀다. 강원 삼척에서는 보들보들하고 좋은 꼴을 베어다가 소에게 먹였다 해서 이날을 소 시집가는 날이라고 했다. 단오날에는 씨름, 탈춤, 그네 뛰기 외에도 나무공을 멀리 치는 격구, 편을 나눠 상대방을 향해 돌을 던진 석전 등 많은 민속 놀이가 행해졌다.
봄 편에는 강등학 강릉대 교수 등 108명이, 여름 편에는 이창식 세명대 교수 등 123명이 필자로 참가했다. 두 편 모두 임동권 전 중앙대 교수, 장주근 전 경기대 교수 등 민속학계 원로가 감수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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