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명품쌀이 판매부진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3월로 예정된 쌀 수입 개방을 앞두고 수억원을 들여 개발해 지난 해 첫 수확한 최고급 쌀 ‘탑 라이스(Top rice)’가 창고 안에 그대로 쌓여 있다. 맛좋은 외국쌀과 경쟁해 이길 수 있는 ‘구원미(米)’로 내세우고 있지만 지나치게 비싼데다 홍보부족과 판매망 부실로 지금까지 수확량의 10%밖에 팔리지 않았다.
●아산에선 520톤 수확, 7.6톤 판매
정부가 최고 등급을 보장한 탑 라이스는 지난해 11월 전남 나주와 강진, 충남 당진, 전북 익산ㆍ군산 등 전국 16곳 생산단지(1,095㏊)에서 6,060톤(조곡 기준)이 생산됐다. 하지만 3개월 동안의 판매실적은 형편없다.
나주 동강농협의 경우 지난해 쌀 320톤을 생산했지만 판매는 고작 5톤에 불과했다. 260톤을 생산한 강진농협도 13톤을 판매하는 데 그쳤다. 경북 상주시 사벌단지는 500여톤을 생산해 놓고도 겨우 25톤 밖에 팔지 못했다.
충남 아산단지는 쌀을 팔았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조곡(벼)으로 520톤을 수확했지만 아직도 508톤이 저장시설에 그대로 쌓여 있다. 도정해서 판매한 양이 겨우 7.6톤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진청은 최근 각 지역별로 판매실태을 파악하고도 정확한 실적 공개를 꺼리고 있다. 농진청은 “각 생산단지별로 판매율이 5~15%에 불과하다”고만 말하고 있다.
●1만6,000개 판매소 중 119곳서만 판매
이처럼 판매실적이 부진한 것은 홍보 부족과 함께 판매망 확보 등 유통대책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전국 1만6,000여개 쌀 판매장 중 탑 라이스가 판매되고 있는 곳은 겨우 119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더구나 농진청은 미질 하락을 이유로 가공 후 15일이 지난 제품은 판매장에서 전량 회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충남지역 한 생산단지 관계자는 “정부가 쌀 출시 때 공격적인 홍보활동을 했어야 했는데 이를 하지 못해 다른 브랜드 쌀에 비해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품질만 좋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판매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냐”고 꼬집었다.
가격도 국내 일반 브랜드 쌀과 외국산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점도 판매부진의 한 원인이다. 시중가격은 5㎏ 한 포대에 2만2,000원으로 일반 브랜드 쌀보다 2배 이상 높다. 당장 3월 외국산 쌀 시판이 이뤄지면 전체 수입쌀의 80%를 차지하는 미국ㆍ중국산과 한판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미 2004년 농촌경제연구원은 국내시장 시판용 외국쌀에 수입이익금을 붙여 가격(20㎏기준)을 산정하면서 수입 첫해 미국산은 4만3,000원, 중국산은 4만1,000원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밥맛과 가격이 괜찮다면 수입쌀도 고려해보겠다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쌀의 고급화’만으로 낮은 가격 경쟁력을 극복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나주 동강 농협 관계자는 “외국쌀은 차치하고라도 ‘카드깡’ 등으로 불법 유통되는 일반 국산 브랜드 쌀(20㎏) 가격이 3만원대인걸 감안하면 당연히 탑 라이스의 가격경쟁력은 없다”며 “솔직히 일부 부유층 말고 사먹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털어놓았다.
●농진청 “4월 되면 판매량 늘 것” 느긋
농진청은 이에 대해 불과 몇 달만에 판매 부진을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국내 쌀 시장이 비수기(11~1월)가 지나고 일반 쌀의 미질이 떨어지는 시기인 4~5월이 되면 점차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탑 라이스의 경우 일반쌀과 달리 적정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저온저장시설에 보관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밥맛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일반쌀이 기온 상승으로 미질이 떨어지는 7~9월이 되면 탑 라이스의 판매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농진청은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판매장을 500곳으로 늘리고 전용식당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판매가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다양한 브랜드쌀을 판매하는 시군의 눈치를 보며 적극적인 판촉 및 홍보활동 부담을 느끼고 있는 데다 밥맛에 대한 소비자들의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진청의 한 관계자는 “일반 브랜드 쌀 생산업체로부터 ‘정부가 기술지도한 쌀만 살리고 나머지 쌀은 모두 죽이려고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며 “이 때문에 외국쌀을 뛰어넘는 최고의 품질을 갖고도 소비자들을 상대로 타 브랜드 쌀과 비교 시식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k.co.kr
■ 탑 라이스/ 농진청, 쌀시장 개방 대비 2억6,000만원 들여 개발
탑 라이스는 농촌진흥청이 쌀시장 개방에 대비해 추진해온‘쌀의 혁명 프로젝트’로 탄생한 국내 최고의 명품쌀. 농진청은 탑 라이스 생산을 위해 2억6,000만원의 개발비를 들여‘추청’‘신동진1호’‘수라’ 등 8개 우수 벼 품종만을 엄선하고, 모내기에서 수확후미질검사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기술지도와 품질관리를 했다.
찰기와 투명도, 밥이 굳어지는 속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함량 기준을 6.5% 이하(일반 고품질쌀 7% 이상)로 정했고, 덜 익거나 깨진 낟알이 섞이지 않은 완전 미비율도 95% 이상으로 정했다.
밥맛이 제일 좋은 쌀이 나오도록 기준치를 만들어 계량화한 것이다. 농진청은 여기에다 질소비료 사용량을 논 면적 10a(약 300평)당 7㎏ 이하로 줄이고, 수확 전 포장 검사와수확후쌀의 품질 검사에 통과 한 쌀만 탑라이스의 브랜드를 달게 했다.
안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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