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저출산과 양극화라는 새로운 걱정거리로 온 나라가 울상이다. 젊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데 노인들은 점점 오래 살고, 성장은 겨우 유지될 뿐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된다. 그대로 두면 생산성의 저하와 의존인구의 증대, 그리고 사회적인 갈등의 심화가 예상된다.
정부도 고민 끝에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희망 한국 21’로 대표되는 일련의 대책들이 그것이다. 최근 정부 발표를 보면, 향후 5년간 저출산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약 3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러한 일련의 대책들이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저출산이나 양극화라는 것이 우리만의 골치거리는 결코 아니다. 다른 선진국들도 이미 경험했던 문제들이거나 지금도 머리들을 싸매고 있는 사안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선진적 국가발전의 이상향으로 이해하고 있는 ‘복지국가’라는 것은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때문에 통합적인 국가경영전략으로서의 복지자본주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옳게 풀어낼 수 없는 문제들이 저출산과 양극화이다.
●저출산과 양극화 난제 직면
현실에서 자본주의는 순수한 시장만으로 굴러가지 못한다. 동시에 복지국가도 시장의 성공에 기대지 않고서는 작동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저출산과 양극화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국가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선결과제임이 자명하다.
우리만의 복지국가를 설계해내는 것이 만만한 과제는 아니지만, 선진국들이 시행착오 끝에 일궈낸 각각의 해결책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위한 원칙 정도는 쉽게 정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복지국가를 인간에 대한 투자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에 기대어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경제구조를 보면 이 원칙의 의미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다음으로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관련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자는 복지국가의 경제적 지속성과 관련되고, 후자는 정치적 지속성에 다름아니다. 어렵사리 마련될 30조원의 돈이 이러한 원칙에 따라 사용되어야만 저출산과 양극화 문제에 대한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히 잘 작동하는 복지강국들의 생산적 복지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단편적인 현금급여보다는 육아, 양로, 교육, 고용 등에 대한 생산지향의 보편적 사회서비스를 복지정책의 앞자리에 둔다. 사회서비스 중심의 복지국가가 생산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통해 새로운 생산성을 창출하고, 출산율을 높임과 동시에 차세대 인적자본을 양성하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복지에 쏟더라도 그 돈을 생산으로 회수할 능력이 없는 한, 그런 종류의 복지국가에 미래는 없다.
정치적인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주요 정책들이 전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갖추어야만 한다. 민주주의사회에서 국가의 미래상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은 국민적 여론일 수밖에 없다.
●생산성 지향하고 온국민 체감케
사회조사를 해보면 우리 국민의 복지인식은 가끔 이중적인 면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국가복지의 확대를 절실히 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 확대에 필요한 세금을 내는 데는 지극히 인색하다. 현재 진행 중인 우리의 복지정책 중에 많은 국민이 일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복지국가를 살펴보아도 결국 우리 몸에 꼭 맞는 옷은 어디에도 없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선진 복지국가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되, 적절한 맥락에서 토착화시킬 수 있는 의지와 비전이 우리에게 있는가에 관한 자성이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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