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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킬링필드' 심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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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킬링필드' 심판한다

입력
2006.01.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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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만 캄보디아인을 죽음으로 내몬 ‘킬링 필드’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내달 시작된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17일 ‘크메르 루즈’ 핵심인물에 대한 유엔 국제재판소가 내달 캄보디아에서 활동을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2000년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는 1975~79년 집권 중 숙청 기근 강제노역 등으로 800만 캄보디아 인구의 5분의 1을 숨지게 한 크메르 루즈 정권 학살자에 대한 국제재판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재판소 성격 및 재판부 구성, 재판 형식을 둘러싼 밀고 당기기로 5년 여를 공전해왔다.

지난 7일 크메르 루즈 붕괴 27주년 기념식에서 집권 캄보디아인민당의 체아 심 총재는 재판소 설치를 지지한다고 발표해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죄는 급물살을 탔다.

재판부를 구성할 외국인과 캄보디아인 판사를 선발하고 수도 프놈펜의 남서쪽 칸토크에 재판정도 마련되고 있다. 국제재판소의 유엔 대표 미셸 리가 내달 캄보디아에 입국하면 개정(開廷) 작업은 본격화할 전망이다. 5,36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도 확보됐다.

‘킬링 필드’는 미국의 비호를 받던 론 놀 장군의 우파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75년 집권한 크메르 루즈가 숙청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집단학살. 크메르 루즈 집권 동안 최대 30만 명에 달하는 지식인과 시민이 처형됐고 굶주림과 강제노역을 포함해 모두 17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유엔은 크메르 루즈에 의한 집단학살을 인권범죄로 규정해 전쟁범죄 법정 설치를 요구했으나 캄보디아 정부는 그동안 국내법에 따른 재판을 주장했다. 크메르 루즈 전범재판소는 양측의 요구를 절충, 유엔의 르완다 전범재판소나 옛 유고 전범재판소와 달리 ‘국제 차원의 국내 재판정’이라는 복합적 성격을 띠게 됐다. 5명의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는 캄보디아인 판사가 과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합의제로 결정되는 판결에는 반드시 외국인 판사 1인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기소 대상은 크메르 루즈 정권에서 총리를 역임한 키우 삼판, 누온 체아 전 캄보디아공산당 부서기장 등 10명 이내. 크메르 루즈의 집권자 폴 포트는 98년 사망했고 캄보디아에 구금된 2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핵심인물은 도피 중이어서, ‘피고 없는 재판’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 현재 캄보디아 정부 및 여당 지도자 상당수가 크메르 루즈 출신이기 때문에, 캄보디아인 판사들이 정치 조작에 휘말릴 여지도 있다. 75~77년 크메르 루즈 특수부대 부연대장으로 복무했던 훈 센 총리에 대해서도 학살개입설이 돌고 있으나 그가 기소될 만한 범죄에 연루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비정부기구(NGO)인 캄보디아문서센터는 목격자 수백명의 증언과 관련 문서 수만 건을 수집하는 등 증거를 확보, 국제재판소 재판부에 제공할 방침이다. 강제노역의 피해자였던 숀 비소스 재판조정관은 “재판은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정의를 실현하고, 젊은 세대에 역사를 정확히 알려 이런 잔혹한 학살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키우 삼판·누온 체아 등 법정에 학살 총지휘 폴 포트는 사망

'킬링필드' 법정에는 이엥 사리 전 외무장관, 키우 삼판 전 대통령, 누온 체아 캄보디아 공산당 전 부서기장 등이 가장 먼저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1975년부터 5년간 진행된 학살을 총 지휘했던 폴 포트 당시 캄보디아 공산당 당수는 80년대 말까지 부활을 꿈꾸며 게릴라전을 벌였으나 결국 종신 자택 감금형에 처해졌고, 98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2인자'로 꼽히는 누온 체아는 현재 태국과 국경을 접한 파이린 마을에서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언론 인터뷰에 종종 등장해 "'킬링필드'를 부인하지 않겠으며 책임을 지겠다"고 밝히는 등 재판을 받겠다는 자세다.

반면 크메르 루즈 정권의 총리였던 키우 삼판은 최근 자서전에서 "나는 동족을 살해하기 위해 크메르 루즈에 가담한 것이 아니며 '허깨비 지도자'에 불과했다"며 대학살과 무관함을 주장했다. 그 역시 파이린에 은신하고 있다.

서열 3위였던 이엥 사리 전 외무장관은 파이린을 다스리다 96년 1만 명에 달하는 군인을 이끌고 캄보디아 정권에 투항했다. 시아누크 국왕으로부터 사면받은 뒤 계속 파이린을 통치하고 있는 그는 최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나를 심판하면 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서열 7위로 '캄보디아의 도살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지닌 타 목 크메르 루즈 군총사령관과 '투올 슬렝 교도소(S_21)'소장이었던 캉 켁 예우도 양민 학살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이들은 99년부터 캄보디아 군 특별형무소에 억류 중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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