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한류’를 걱정한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잘 안다. 문제는 실천. 이제 ‘한류 스타’ 내세워 인기만을 파는 것은 어렵다. 아시아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다. 상호교류와 발전, 함께 서로의 문화를 즐기고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베트남에서 ‘제2 한류’를 열고 있는 두 주인공을 만났다.
▲ 김태형 시네넷 대표
“그들도 우리처럼 되기를 원한다. 과거 한국영화가 홍콩영화를 통해 발전했고, 그것을 뛰어넘어 세계시장으로 나아갔듯이. 초기 인프라가 없으니 우리와 더불어 만들고, 그 과정에서 노하우를 배워 베트남 영화 수준도 한단계 높이겠다는 것이다.”
베트남과 최초 본격합작영화 ‘무의의 12가지 비밀’을 만드는 김태형(40) 시네넷 대표는 “그 기반을 적극 마련해 주는 것이야말로 한류를 지속시키고 확대하는 길”이라고 했다. “알다시피 한국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비슷비슷한 스토리, 분위기, 형식 탓도 분명 있다.
더 큰 문제는 문은 열었지만 여전히 경직된 베트남의 문화정책과 문화다양성 부족에 있다. 모든 연령관람가 아니면 불가로 구분하는 등급, 미신 공포 폭력 사회풍자 작품의 제작과 상영 금지 등이 그 예다.
당연히 베트남 영화의 소재도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것들이 영화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합작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나오면 정책과 제도도 바뀔 것이다. 그러면 한국영화도 지금보다 훨씬 시장성이 커질 것이다.”
아무도 “힘만 들지, 별볼일 없다. 베트남이 무슨 시장이라고”라며 엄두 못 냈던 2002년 2월, 홀로 호치민에 뛰어들어 베트남 국영영화사인 파필름과 합작으로 3개관 480석 규모의 멀티플렉스극장 다이아몬드시네마(DMC)를 연 김 대표이기에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실제 그것을 증명하는 변화들이 오고 있다.
‘신라의 달밤’ ‘번지점프를 하다’의 2년 전 상영금지 때와 달리 지난 연말 ‘귀신이 산다’는 배급과 상영 허가를 받았다. 반응도 예상 밖. 전국 2,3만 명을 예상하고 광고 하나 안 했는데 10만 명을 넘기며 지금도 지방에서는 상영중이다.
‘무의의 12가지 비밀’은 한발 더 나아간다. 미신이라며 아예 금지하는 공포물. 베트남 외국인학교 복도에 걸려있는 ‘무의’란 여자의 초상화에 얽힌 비밀을 작가 지성원씨가 시나리오화 했다. 감독을 포함한 메인 스태프는 한국, 보조 스태프와 기자재는 베트남이 맡는다. 총제작비는 50억원 규모로 올 7월 촬영을 시작해 2007년 7월 개봉할 예정이다. “베트남에서는 프랑스 자본으로 만든 트란 안 홍 감독의 ‘그린파파야 향기’‘시클로’ 같은 작품을 외국영화로 생각한다. 그들은 얼마라도 자기 손으로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한다.”
이런 분위기 타고 갤럭시 등 민간영화 제작ㆍ배급사도 생겼고,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한 젊은 보트피플이 베트남으로 돌아와 상업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갤럭시는 작년 7월 DMC와 같은 1구역인 호치민 중심가에 1,000석 규모의 멀티플렉스까지 열었고 작년 하반기부터 극장에 100% 외국인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5월에는 하노이에 미국과 말레이시아 합작의 8개관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
정부도 다양한 영화제작과 상영의 걸림돌인 심의기준을 올해 말부터 우리와 같은 4등급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당장은 돈이 안 되더라도 상호 존중하고 경쟁하면서 발전해야 한다. 그것이 한류의 경쟁력과 시장을 키우는 방법이다. 배우 얼굴이나 팔다 보면 베트남 시장은 없어진다.”
2003년 7월 다낭에 3개관의 440석 규모의 또 하나의 DMC를 열 때까지만 해도 그는 베트남 영화시장의 ‘유아독존’이었다. 할리우드영화를 포함, 전체 배급작품의 절반이상을 장악했고, DMC는 열자마자 ‘연애하는 곳’이란 극장의 인식을 ‘고급문화공간’으로 바꾸면서 5만동(약 3,500원)이란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좌석점유율 70%를 기록했고, 전국관객 10%이상을 끌어 모았다.
김 대표는 자신이 베트남의 문화개방 확대에 엄청난 가속을 붙여주었다고 자부한다. 실제 3년동안 엄청난 변화가 생겨 지금은 영화배급시장에도 베트남의 갤럭시, 미국 자회사인 비젼넷 등 4대 메이저가 생겼고, DMC의 멀티플렉스 독점도 끝났다.
그러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제2단계 한류를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합작과 함께 멀티플렉스도 4개 도시, 스크린 수 각 8개로 늘릴 계획이다. “지금까지 배급한 영화, 새로운 극장을 통해 베트남 관객층도 다양해졌다. 우리가 그들을 존중한다면 아직도 한국 스타와 영화는 그들에게 매력적인 문화상품이다.
1년에 600만 명인 영화관객수도 2,000만 명까지는 늘어날 것이다. 그러자면 한국영화의 질도 높아져야 하지만, 베트남영화 제작도 연 10편에서 30편까지는 늘어나야 한다. 우리가 도와야 한다. ‘무의의…’ 결과를 보고 난 다음 20, 30?달러 규모의 100% 순수 베트남영화를 제작해 볼 생각이다.”
▲ 김세혁 FnC미디어 베트남 대표
호치민 인접 위성도시 투덕에 한국ㆍ베트남 최초의 합작드라마 촬영을 위해 7만평 규모의 야외오픈세트가 지어지고 있다. 2,000평 규모의 스튜디오, 거리와 마을이 3월이면 완공된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도시 빈증에서는 벌써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다. 100부작 ‘무이응오가이’(실난초인 응오가이의 향기란 뜻)로 작년 12월12일 촬영을 시작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여주인공 비의 역경과 고난과 성공을 그리고 있다. 베트남 여배우 응옥찐이 주연을 맡았다. 스태프는 반반. 연출 역시 MBC프로덕션 출신의 황철수 PD가 맡았지만 베트남 방송 PD 2명이 같이 한다. 벌써 12회 분량을 찍었고 5월이면 국영 VTV(베트남 TV)에서 방영한다.
‘현지화 전략에 의한 새로운 한류로서 합작’은 드라마라고 예외는 아니다. ‘무이응오가이’ 제작사인 김세석 FnC미디어 베트남 대표는 “한국 드라마로는 한계가 있다.
비슷한 드라마의 반복에 베트남 TV는 자국 프로를 40%이상 방영해야 한다. 더구나 프라임타임대(오후 9시대)는 외국 드라마에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합작이야말로 베트남 TV로서는 자국프로방영과 제작 노하우 배우기, 한국으로서는 시장확대라는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전략”이라고 했다.
베트남 방송은 돈이 없어 제작비를 주지 않고 외주제작사에 드라마를 맡긴다. 대신 방영시간의 10~15%를 광고에 할애해 제작비를 건지도록 해준다. 2002년부터 제안했지만 좀처럼 문을 열지 않았다. 김 대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어려움을 참으며 2년 동안 계속 두드리고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베트남어로 번역한 대본까지 준비했다. 마침내 지난해 그 문을 열었다. HTV(호치민 TV)와 합작, 지난해 초 방영한 24부작 시트콤 ‘사랑의 꽃바구니’가 그것이었다. ‘오박사’ ‘순풍산부인과’의 신동익 작가가 쓴 대본을 보고 서였다. “작가가 베트남에 살았었느냐”“우리 정서와 똑 같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드라마 합작 꿈도 이뤘다. 뿐만 아니라 HTV와는 ‘사랑의 꽃바구니’의 나머지 76부작 제작과 방영시간(오후 6~7시)도 따내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이렇게 베트남 TV가 문을 활짝 열어준 이유를 김 대표는 “그들이 쓰지 못하는, 그들에게도 재미있는 대본”에서 찾고 있다. “베트남 드라마의 최대 약점은 대본이다. 소설 쓰듯 대본을 쓰니 신도 늘어지고 드라마적 긴장도 적다. 배우들도 대사를 글 읽듯이 한다. ‘대장금’‘상도’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유교적 문화코드까지 공유하고 있으니.”
‘무이응오가이’도 마찬가지다. 작가 권인찬씨와 무려 14명의 베트남 작가, 그리고 베트남어를 하는 한국인 사이를 수차례 오가며 시대상황, 말투, 장면을 고치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베트남 작가들이 빠르게 한국의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김 대표는 그들이 방송 메커니즘을 알게 되고, 호흡도 맞고 익숙해질 때쯤이면 대본까지 아예 맡기는 방법도 가능해 질 것”이라고 했다.
촬영도 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한국의 절반 제작비로 찍어야 하니 여러 카메라로 동시 촬영, 동시 녹음, 한꺼번에 여러 장면 촬영 등으로 이틀에 1편을 찍는 속전속결이다. 이를 보고 그동안 손쉬운 게임쇼나 만들면서 상대적으로 투자비 많고 제작기간이 길어(1회 촬영에 15일 정도) 외면했던 베트남의 프로덕션들이 일제히 드라마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단다.
국내에서 음반제작, 연예인 매니지먼트사업를 하다 한류바람 타고 2001년 베트남으로 왔다는 김 대표. “일방적 보여주기는 결국 모래 위에 물 뿌리기에 불과하다.
쌍방향이어야 하고, 이들도 그것에 매우 민감해 한다. 한국 TV에 자기나라 스타가 나오고, 그들의 콘텐츠 창으로 우리 문화를 보여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 ‘무이응오가이’가 이런 발판을 마련하지 않을까.”
호치민= 이대현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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