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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나르시시즘 정치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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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나르시시즘 정치의 비극

입력
2006.01.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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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自己愛) 또는 자기도취를 뜻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격장애로 규정한다. 연못에 비친 제 모습을 연모하다 끝내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된 미소년 나르시스를 그리스 신화에서 끌어내 정신분석에 응용한 프로이트 등에 따르면 원래 인간은 유아기에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여긴다.

이런 유아적 나르시시즘은 성장과정에서 환멸과 좌절과 비판을 경험, 자신의 한계를 깨달으면서 건강한 자존의식으로 바뀐다.

그러나 극복할 수 없는 장애를 만났을 때 우회하지 않고 유아적 나르시시즘으로 퇴행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세상의 평가와 도전에 오만하게 맞서는 것이다. 이들은 맹목적 지지를 요구하다 좌절을 거듭할수록 자신을 만능의 존재로 끌어올려 환상적 성공을 구상하는 데 몰입한다.

●소명과 능력 과신하는 퇴행 심리

퇴행적 나르시시즘은 흔히 정치 지도자들에게 두드러진다고 한다. 물론 대통령과 같은 위치에 오르려면 범상치 않은 자기확신과 성취욕과 의지가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병리적 수준에 이르면 자신과 사회와 국가에 해악을 끼친다. 그 병리학적 증상의 특징은 일반의 정서나 객관적 평가는 아랑곳 없이 끊임없는 자기현시(顯示)와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개인적 야망과 사회적 지배를 이루려 하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대의 정신분석학자 스티븐 숄츠(Stephen Soldz)는 최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나르시시즘의 틀로 분석했다. 그는 대통령에 대한 인격 살인 의도는 없지만, 부시의 언행에 나르시시즘의 특징이 두드러진다며 미국과 인류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했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침공 등과 관련, 하느님과의 교감과 메시아적 사명감을 언급한 것부터 나르시시즘적 환상을 갖고 있다는 표시다. 이라크 민주화와 중동평화 전망에 대해 정상적 안목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확신을 되풀이 공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숱한 인명을 살상하고도 바닥 모를 수렁에 빠진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도 나르시시즘의 특징이다.

부시의 나르시시즘은 헌법과 법률 준수여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테러 예방을 위해 불법 도청과 구금, 고문 등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은 신성한 소명을 받았다고 믿는 심리다. 역대 대통령도 초법적 비밀공작을 승인하거나 묵인했지만, 이를 공공연하게 정당화하는 것은 자신의 위상과 능력을 과시하려는 나르시시즘의 발로라는 얘기다.

세상의 맹목적 지지를 기대하는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신봉하는 인물을 능력이나 세평과 관계없이 중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시 대통령은 오랜 측근이라는 사실밖에 이렇다 할 경륜이 없는 마이어스 법률보좌관을 대법관에 지명했다가 실패를 자초했다.

마이어스는 지적 능력과는 거리 멀다는 평판인 부시를 자신이 만난 가장 똑똑한 인물이라고 아첨하기를 서슴지 않은 이다. 국무장관 라이스를 비롯한 다른 측근도 대통령과 다른 의견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패 외면한 승부수 구상의 위험

숄츠는 이런 대통령의 나르시시즘이 성공과 실패에 함께 기여한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애초 대중은 세상의 편견과 장애를 뛰어넘어 의지를 관철하는 지도자에게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그게 부시의 정치적 힘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국민이 메시아적 구호와 전혀 다른 현실에 눈 뜨면서 대통령의 나르시시즘은 모두에게 해로운 집착이 된다. 이런 국민적 각성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부시의 추락도 반전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쯤에서 대통령의 각성을 기대할 만 하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약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심리 저변에 숨기고 있다. 이에 따라 실책을 인정하기보다 오직 승리만이 대안이라는 신념으로 마법처럼 절묘한 새로운 구상에 매달린다. 그것이 역사상 실패로 끝난 나르시시즘 정치와 지도자의 공통된 행로라는 것이 숄츠의 결론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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