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이 싫어요. 차라리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주세요.”
서울시의 은평 뉴타운 추진에 반대해 지난 10월부터 시청앞에서 1인시위를 벌여온 은평구 진관내동 한양주택 주민들이 주거지 일대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16일 한양주택대책위원회와 문화연대 등에 따르면 한양주택 실거주 세대주 가운데 절반이 넘는 90여명이 “한양주택이 뉴타운에 수용되지 않도록 마을 전체를 문화재로 지정해 달라”는 내용의 주민동의서와 신청서를 작성했다.
등록문화재란 역사ㆍ문화적 가치가 있지만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지정ㆍ보호하는 문화유산으로, 덕수궁 석조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는 달리 외형을 크게 변경하지 않는 범위에서 수리 및 활용이 가능하지만, 소유주들은 재산권행사의 어려움 때문에 지정을 꺼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지난해 서울 명동 스카라극장과 옛 대한증권거래소 건물의 소유주들은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 예고하자 건물을 철거해 버리기도 했다.
한양주택은 1974년 남북공동성명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북측 대표단의 방문에 대비해 만든 ‘전시용’ 주택단지로 대지 50여 평에 건평 29평짜리 단층 양옥 200여 채가 북한산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줄지어 있다. 처음엔 황량한 콘크리트 주택가였으나 30여 년의 세월 동안 동네 주민들이 꽃과 나무로 마을을 가꿔 서울에서 보기 드문 환경친화적 마을로 알려져있다.
주민들은 신청서에서 “뉴타운 개발로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기보다는 이웃끼리의 도타운 정을 지키며 살고 싶다”며 “1996년 한양주택을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한 서울시가 이제 리조트형 생태전원도시를 만든다며 철거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했다. 주민 성백순(여ㆍ73)씨는 “이 동네에서는 두 식구만 살아도 김장을 50포기씩 한다”며 “옆집, 뒷집 나눠주다 보면 그것도 모자란다”고 이웃간의 정(情)을 강조했다.
문화연대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은 “한양주택 주변에는 창릉천 등 자연이 살아있고, 이웃 간의 정이 남아 있어 생태ㆍ문화적 보존가치가 크다”고 주장했다. 황 위원장은 “원래 등록문화재는 지은 지 50년이 지난 근대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하지만,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시설물은 예외적으로 등록할 수 있다”며 “이문동 안기부청사 등도 이 규정에 의거,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시 뉴타운사업본부 관계자는 “은평 뉴타운은 낙후한 강북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일부 주민의 의사보다는 지역간 균형개발을 통한 시민의 삶의 질 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한양주택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더라도 3월부터 협의매수를 시작하는 등 예정대로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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