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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48)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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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48)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

입력
2006.01.1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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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5월,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州) 원주민 권익 보호를 위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지도자 마르코스가 이탈리아 프로축구(세리아A)의 부자 구단 인터 밀란에 축구 시합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멕시코 정부의 사파티스타 협상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루이스 알바레스 대통령 특사는 “내가 멕시코 전체 정부를 대표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훌륭한 시도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 의견이다”라고 평가했다.

마시모 모라티 인터밀란 구단주와 팀의 주장 자비에르 자네티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인터 밀란은 그 동안 사파티스타에게 물과 운동기구 등을 제공하며 인연을 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자유주의 정책 주도의 일방적 세계화와 금권정치에 무력으로 저항해 온 사파티스타의 독특한 투쟁 방식이 잘 드러난 경우라 할 수 있다.

사파티스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일인 1994년 1월1일 봉기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원주민 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해온 멕시코의 혁명적 자치집단이다. 10여 년째 멕시코 정부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열강과 맞서 투쟁중인 이들은 어느덧 전방위적인 지지와 옹호를 불러일으키는 21세기 혁명가 집단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초창기 정부군의 강압적인 진압에 폭력으로 맞섰던 이들은 현재 오토바이를 타고 멕시코 전국을 순례하는 등 평화적인 시위를 통한 스스로의 정체성 강화 및 재정립에 주력중이다.

이것은 사파티스타의 실질적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마르코스가 ‘부사령관’이라는 이전의 군사적 직함을 버리고 ‘제로(0) 대표’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한 사람임을 강조한 데서도 드러난다. 사파티스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스키마스크처럼 마르코스는 스스로의 개인적 정체성을 가림으로써 그의 행동과 말에 모종의 전체적인 힘을 부여한다.

그는 급변하는 상황을 자신의 페이스로 전환시키는 데 타고난 능력을 가진 지략가이자, 말의 본원적인 힘과 가치를 선취한 섬려하고 강직한 문장가이다. 그가 전 세계적인 지지와 반향을 얻게 된 데는 치아파스의 고산지대에서도 그의 말을 만방으로 실어 나를 수 있게 한 인터넷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르코스를 ‘포스터모던 혁명가’라 부른다. 그런데 이건 비단 매체에 국한된 표현만은 아니다.

20세기를 피와 환희의 소용돌이로 들끓게 했던 기존의 혁명들이 변증법적 패턴에 의한 권력 침탈의 폐쇄적 순환이었다면 사파티스타의 혁명은 각기 자치집단들의 게릴라적 이합집산을 통해 쉼 없이 탈각하는 특징을 가진다. 전 세계적인 권력 시스템으로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촘촘한 그물망 안에서 마르코스는 그 그물을 구성하는 인자들을 응용해 그물망 자체에 균열이 일게 한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모토인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액면 그대로 원용하는 방식으로 전혀 다른 의미와 파급 효과를 생산하거나 매스컴을 이용한 이미지 전략을 통해 경제적 문화적 맹아 상태에 놓인 세계의 매장된 진실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식이다. 그럼으로써 일방적으로 주유되거나 훼손된 인간의 본원적 힘과 가치를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내게 된다. 그것은 세계 자체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자 변증법의 고리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코스가 스스로를 아이콘화(化)하는 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스키마스크 뒤에 숨은 진실과 힘을 감득케 하려는 의도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자발적 신비라고도 부를 만한 그러한 전략은 세상이 은폐하고 있는 진실에 대한 역설적인 환기력을 갖는다. 전 세계로 전파된 마르코스의 글들을 한데 모아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윤길순 옮김, 해냄)를 묶은 후아나 폰세 데 레온은 책의 서문에서 마르코스의 가면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가면은 마르코스가 자신의 특수한 출신 성분을 떨쳐버리고 공통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해주는 변형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투명하며, 하나의 아이콘과 같은 상징적 존재다. 그는 보이려고 얼굴을 감춘다. 이런 역설은 그의 모든 글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마르코스는 인간의 보편적 진실에 가면을 씌우고 있는 세계 자체의 허위성과 가식에 정면으로 응대한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자아를 스스로 지우고 망각하면서 ‘우리’ 속에 하나로 스미기 위해 가면을 쓴다. 그렇게 검은 가면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사파티스타는 그들에 감화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오랫동안 씌워져 있던 가면을 벗긴다. 이를테면 그들은 서로의 가면을 통해 가면 속의 얼굴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서로의 벌거벗은 진실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 진실은 비단 멕시코 남부의 한 빈곤한 고산지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가치와 힘에 눈뜬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마르코스의 글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는 진실의 대동맥이다. 그의 글은 오랫 동안 잊혀져 있거나 핍박 받아온 인간의 실체적 진실을 새롭게 헹구고 다려 핏덩이 생생한 현실로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나 사파티스타가 아닌 마르코스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멕시코의 한 엘리트에 불과하다.

마르코스는 그의 글에서 무수한 변용태로 등장하며 개인의 한계를 넘어 보편의 진실을 드러낸다. 자신의 나이가 500살이 넘었다고 말하는 마르코스는 특정한 개인의 역사가 아닌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계속된 원주민 수탈의 역사 그 자체를 표상한다. 마르코스는 멕시코 자체이자 세계 자체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이 된다.

마르코스가 10여 년 동안 전 세계로 날려 보낸 글들은 내용과 형식을 통틀어 방대하고 다채롭지만, 그의 근본적 신념과 방법론을 비유적으로 드러낸 단장이 내겐 인상적이다. 무장봉기 초창기인 1995년경에 씌어진 짤막한 글이다.

“뒷면에 조각을 하면, 거울은 더 이상 거울이 아니라 유리가 됩니다.

거울이 이쪽을 보기 위한 거라면, 유리는 저쪽을 보기 위한 것입니다.

거울은 동판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유리는 깨뜨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저쪽으로 건너가기 위해….”

시적 직관과 철학적 통찰이 버무려진 이 글은 직접 총을 들고 맞서 싸우던 마르코스의 내면적 다짐인 동시에 앞으로의 투쟁전략에 대한 기초 단상으로 읽힌다. 그 아래에는 “아주 많은 거울 가운데서 깨뜨릴 유리를 찾는 현실 또는 비현실의 상…”이란 말이 추신으로 붙어 있다. 마르코스는 거울 속 현실에 갇힌 허위와 가식의 장막을 깨뜨리고 ‘저쪽’으로 가고자 했다. 그런데 ‘저쪽’이란 기실, 세계의 바깥이 아니라 세계의 더 깊은 중심이자 본질이다. 역설적으로 말해 ‘저쪽’을 보지 못하는 건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울은 세계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아집과 망아에 휩싸인 자기 자신의 거짓된 영상을 보고 자기 자신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거울은 가면의 표상이다. 마르코스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가면이 감추고 있는 ‘저쪽’을 ‘이쪽’으로 옮겨놓는다. 그러고 보니 ‘이쪽’이 본래 ‘저쪽’이었다는 명백한 진실이 드러난다. 모든 천재가 그랬듯 마르코스 또한 위대한 상식의 발견자인 셈이다.

사파티스타의 무력 투쟁이 한창이던 9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에 게재된 사파티스타 관련 기사들을 훑어보면 봉기의 이유나 사파티스타의 핵심 주장에 대해선 얼버무린 채 멕시코 정부군과 사파티스타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건조한 나열이 대부분이다. 마르코스의 피 끓는 글들이 무선 인터넷 망을 타고 전 세계로 뻗어나갈 무렵에도 고작 멕시코에 대해 우리가 전해들을 수 있는 뉴스는 성공적인 외환위기 극복의 본보기라거나 때마침 열렸던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의 조별 리그 첫 상대로 16강 진출을 위한 1승 제물이라는, 지극히 국가주의적인 집단최면 뿐이었다. 이후, 한국은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국치에서 벗어나 가파른 국제신용도 회복과 2002 월드컵 4강 신화라는 표면적인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짓눌린 진실은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적과 신화라는 거울 속 허상을 깨뜨리고 ‘저쪽’의 진실을 ‘이쪽’으로 옮겨다 놓는 것. 마르코스는 신화가 아닌, 역설적으로 현존하는 수많은 당신들의 진정한 가면인지도 모른다.

시인 nietz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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