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을지로 웅진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 직원들은 죽을 맛이다. 연구소장이 새로 온 이후 퇴근 시간의 개념이 없어졌다. 연구소장이 밤 10시, 11시까지 남아있는 일이 다반사인데다, 그가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밤을 세워 일을 해도 모자라기 일쑤다.
비단 연구소 직원들 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에 그 여파가 만만치 않다. 연구소장이 입사한 이후, 부서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회사 분위기가 살벌해졌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회사의 물을 흐리고 있는 ‘미꾸라지’는 환경기술연구소장 겸 기술기획실장 전계섭(45) 상무다. 전 상무는 지난해 8월 삼성전자에서 옮겨왔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개인휴대단말기(PCS) 시스템개발 등 연구개발(R&D)과 기술기획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가 처음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것은 지난해 초. 7개월여 고민 끝에 가족과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웅진코웨이에서 10년 전 삼성전자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전 상무는 “웅진코웨이의 목표가 ‘3년 내 세계 1등 상품 3개를 갖는 것’인데, 이 목표가 맘에 들었다”면서 “삼성전자도 10년 전에는 세계 1등 상품 3개를 갖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전 상무는 웅진코웨이에 입사한 이후 ‘삼성전자에 있는 것’과 ‘웅진코웨이에 없는 것’, ‘웅진코웨이에 있는 것’과 ‘삼성전자에 없는 것’을 분석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웅진코웨이에는 치열한 경쟁이 없는 대신, 회장이 회식자리에서 농담을 하고, 평사원이 사장을 독대할 수 있는 열린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있었다. 또 삼성전자는 미래에 대한 준비에 철저해서, 5ㆍ7년 후 전략을 수립하는 데 반해, 웅진코웨이는 중ㆍ장기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보다는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전 상무는 웅진코웨이의 장점은 살리는 대신, 삼성전자의 장점은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파악한 웅진코웨이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경쟁이 없는 회사 분위기였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진동모터 기술자만도 수십여명에 달하는 삼성전자와는 달리, 웅진코웨이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태부족했다. 한 두 명의 전문가가 여러 프로젝트에 들어가 일하는 상황에서, 경쟁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전 상무는 국내외 대학을 돌며 유능한 인력을 끌어와야 한다고 경영진을 설득했고,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은 입이 확 벌어질 만큼 인센티브를 줘도 좋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이어 그는 서울대 연구단지에 ‘웅진R&D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한편,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UC버클리 등을 직접 돌며 석ㆍ박사 인력 10여명을 회사로 스카우트 했다.
전 상무는 지금 회사의 중장기 기술전략을 세우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그의 업무 역시 기술인력 채용, 연구소 프로젝트 관리, 국내외 기술도입 검토와 상품기획 등 회사의 중장기 비전과 관련돼 있다.
그는 연구개발과 품질개선만이 중장기 발전의 유일한 밑천이라고 믿고 있다. 전 상무는 “비데나 정수기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 파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잘 만들어 파느냐가 중요하다”며 “국제시장에서 세계 1등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품질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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