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이긴 해도 결혼할 때부터 본가와는 따로 살던 회사원 A(33)씨는 최근 아예 처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집으로 이사했다. 아내 B(31)씨도 맞벌이여서 할머니가 딸 아이(2)를 봐 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친할머니보다는 외할머니가 편하다고 생각한 것. 처가가 가깝다 보니 친가 부모보다 장인 장모와 함께 외식할 때가 더 많다. 아이도 더 두지 않을 생각이다. 아내가 “남편이나 아이보다 내 삶이 더 소중하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26~35세의 ‘X세대’들이 전통적인 부모상과는 다른 새로운 ‘X세대 부모상’을 창출하고 있다. X세대는 1990년대 16~25세였던 젊은 층을 가리키는 말로 규정이 불가능한 세대란 뜻이다. 고도성장과 민주화 혜택을 받아 자기중심적이고 소비지향적인 특성을 보였던 X세대. 그러나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러 ‘아빠ㆍ엄마’가 되면서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새로운 부모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제일기획은 15일 26~35세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조사 및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X세대의 부모관을 분석한 보고서 ‘우리 시대의 페어런츠(Fair-ents), X마미(X-mommy), X대디(X-daddy)’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먼저 전통적인 가족상과 달리 장남이라고 해서 꼭 부모를 모셔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68.3%) 생각했다. 또 친가 식구보다 처가 식구들과 모임이나 외식을 자주하며(51.4%), 아이 양육을 위해서 처갓집 근처로 집을 옮겼거나 그럴 의향이 있을(57.1%) 정도로 친가보다는 처가를 더 가깝게 여기는 ‘처가살이족’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관도 응답자 중 86.4%가 ‘자녀가 꼭 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고, 85.6%는 ‘딸이 아들보다 재산’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통적인 어머니상과 달리 X세대 여성들은 아이ㆍ남편보다 자신이 더 소중하고(71.7%), 아이에 대해 투자한 만큼 자기계발에도 열심인(84.2%)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들이 ‘줌마렐라’(아줌마와 신데렐라의 합성어)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이들은 나와 남, 부부와 자녀 관계에 있어 공평하게 균형을 잡으려는 ‘페어’(fair)한 특성이 있어 기존의 부모를 일컫는 ‘패런츠’(parents)와 다른 ‘페어런츠’(fair-ents)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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