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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교황 저격 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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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교황 저격 배후

입력
2006.01.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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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유명한 암살자의 한 명인 교황 저격범 알리 아그카가 지난 주 터키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1981년 5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를 저격, 중태에 빠뜨린 범행으로 이탈리아 법원에서 종신형을 받은 지 25년 만이다.

1999년 교황에게 석방을 탄원했던 아그카는 이듬해 터키로 추방됐으나, 1979년 터키 좌파 언론인을 암살한 죄로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어 다시 수감됐다. 이번에 풀려난 것은 법원이 그의 사면 청원을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다.

■아그카의 석방은 교황 암살기도에 얽힌 사연을 되돌아보게 한다. 국제 언론은 바오로 2세가 피격 뒤 병상에서 아그카의 죄를 사면하고 83년에는 친히 교도소로 찾아가 용서를 베푼 일 등 지난해 영면한 대교황의 너그러움을 새삼 추앙한다. 이와 함께 범행동기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사실을 일깨운다.

범행 당시 23살이었던 아그카는 소련과 미국의 제국주의 만행에 항의하기 위해 교황을 시해했노라고 미리 쓴 쪽지를 지녔으나 줄곧 횡설수설, 진짜 동기와 배후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당시 서방 언론은 소련KGB를 배후로 지목했다. 폴란드 출신 교황이 동구 민주화운동을 부추길 것을 우려, 불가리아 정보기관을 사주해 암살 음모를 꾸몄다는 가설이 널리 유포됐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레이건 미 행정부 아래 냉전이 막바지 고비로 치닫던 상황에서 소련 음모설은 정설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실제 아그카 재판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 뒤 비판적 언론은 미국과 나토 동맹 정보기관과 군의 글라디오(Gladio) 비밀공작을 의심하는 탐사보도를 잇따라 내놓았다.

■단검이라는 뜻의 글라디오 공작은 좌파와 공산세력의 위험성을 선전, 집권을 막기 위해 좌파 소행으로 위장한 테러와 암살을 자행한 것이다. 1978년 이탈리아 좌파 집권을 막은 우파 총리 알도 모로 암살이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아그카는 터키군 정보기관이 테러공작에 이용한 극우단체 대원이었고, 좌파 언론인 암살 뒤 수감된 군 교도소를 쉽게 탈옥했다가 교황 저격범으로 다시 나타났다. 이런 아그카가 입을 열면 세기의 미스터리가 풀릴지 모른다. 그러나 터키 군은 올해 48살인 그를 병역 미필이라는 이유로 입대시켰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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