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의 향기 쇠창살을 녹이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의 향기 쇠창살을 녹이다

입력
2006.01.16 09:06
0 0

방학 중인 대학 캠퍼스에서 교도소에 보낼 ‘사랑의 책 모으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어 화제다.

10일 한양대 총학생회실로 1통의 편지(사진)가 배달됐다. 무심코 봉투를 열어 본 학생회 간부 김상윤(22ㆍ경제금융학부 2년)씨는 흠칫 놀랐다.

편지 첫 줄이 ‘목포교도소 수번 4XX번 최00’로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의 긴장은 곧 풀어졌다.

편지는 “같이 수감돼 있는 동료들과 새해에는 마음 잡고 책을 읽고 싶으니, 헌 책이든 새 책이든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편지지 뒷면에는 중국어, 무역학, 마케팅, 시집 등 간략한 희망도서 목록도 적혀 있었다.

편지 내용과는 별개로 약간은 무례한 듯한 말투가 거슬렸다. ‘부탁’이라기보다는 어서 책을 보내달라는 ‘요구’에 가까웠던 것. 김씨는 “무시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차가운 교도소 방 안에서 편지를 쓴 마음을 생각하니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겐 흔한 책 한 권이 갇혀 있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큰 힘을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보람도 없을 것”이라며 책 모으기 운동을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총학생회는 교내 인터넷 게시판에 ‘책장 속에 잠들어 있는 책을 깨워달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소개했다. 방학 중이라 따로 행사를 열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학우들은 “말이 거칠다”,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반론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따뜻한 성원을 보냈다.

“새해에는 좋은 일 한번 해보자”, “책꽂이 구석에서 사람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을 이 참에 방출시켜야겠다”, “내일 당장 학교에 가서 책을 한 보따리 전달하겠다”며 적극 동참하겠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한 학생은 “책이 필요해 누군가에게 부탁하려 해도 창피한 생각에 여의치 않았던 경험이 있었다”며 “이번 기회를 살려 앞으로도 많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책 보내기 운동을 지속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5일 만에 총학생회실로 30여권이 모였다. 학생들은 책을 건네면서도 “편지를 보고 우리 사회에서 대학생이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버리려고 마음 먹던 책이라 조금 미안하다”며 한마디씩을 잊지 않았다.

‘가시고기’, ‘연탄길’ 같이 훈훈한 감동을 주는 문학도서 위주라 최씨가 원하는 목록을 다 채울 때까지 책 모으기는 계속된다. 우선 총학생회는 20일 최씨에게 1차로 책을 발송할 계획이다.

총학생회는 “교도소에서 보낸 1통의 편지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학생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며 “이번을 계기로 새 학기에는 고아원 등 다른 사회시설에도 책 보내기 운동을 확대해 나갈까 싶다”고 말했다.

편지를 보낸 최모(37)씨는 지난해 10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징역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교도소 관계자는 “수감자들은 한 방에 보통 6명이 생활하는데 아마도 최씨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책을 나눠 읽으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대표로 편지를 보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