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 마오쩌둥 주석의 사망을 애도하며 전 세계 사회주의권 국가의 지도자들이 보낸 조화 중 빈소 제일 중앙에 위치한 것은 다름 아닌 김일성의 조화였다. 북ㆍ중 관계의 과거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모습이다.
50년대 이후 사회주의 혁명의 동지적 혈맹관계를 탄탄히 과시하던 북한과 중국은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 채택과 동구권의 붕괴 과정을 거쳐 김일성 사망에 이르기까지 상당 기간 소원한 관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러한 북ㆍ중 관계는 김정일 체제하에서 많이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북핵 6자회담 과정에서 보여준 북한과 중국의 팀워크는 과거의 동맹관계 혹은 그 이상이라고 평가될 정도이다. 이러한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열쇠는 무엇일까?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 소식과 함께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北은 中의 對美방어 교두보
북ㆍ중 관계는 한ㆍ미 관계를 단순 유추하여 이해할 수 없다. 태평양 대안의 한반도를 전략적인 고려에서 바라보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깊은 교린 관계를 유지하던 중국이 남북한을 바라보는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도 시장경제라는 넓은 의미의 체제적 유사성만을 유지하고 있는 한ㆍ미 관계와 달리, 북한의 초기 사회주의 혁명 과정은 중국의 그것을 거의 답습했다.
현재의 북ㆍ중 관계는 사회주의적 연대의식이라는 이념적 요인보다는 미국이라는 변수를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기반은 중국 봉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대등한 힘을 가진 강국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은 미국의 외교정책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중국 본토에 묶어놓는 것은 필연적인 요청이다.
초강대국임에도 역사적으로 무수한 외침에 시달려온 중국 사람들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이러한 미국이 태평양을 넘어온 흉노족 정도로 인식됨직 하다. 아직 미국과 정면 대결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 중국 지도부가 이 서양판 흉노족의 봉쇄정책을 최전방에서 막아내기 위해서 내세운 교두보가 북한이다.
따라서 중국이 북한에 가지는 애정과 부채의식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6자회담 과정에서 보였듯이 중국은 “핵은 불용이나 주권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는 절묘한 논리로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를 압박하지도 않고 인권문제 등에서도 직접적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6자회담의 주도를 통해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 가고 있다. 한편 북한도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중국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이번 중국 방문 목적도 이러한 상호 간의 묵계를 재확인하는 데 있을 것이라 본다.
미래의 북ㆍ중 관계는 일차적으로 북ㆍ미 관계의 진전 여하에 달렸다.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체제를 유지해야하는 북한입장에서 다른 한 축이 지금과 같은 적대적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분간 북ㆍ중 관계의 변화도 북핵 문제도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필수적인 중국을 든든한 후원자로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서도 북한이 핵 카드를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북·미 관계에 北·中관계 달려
우리는 그간 핵 문제를 둘러싼 협상 과정에서 북한을 단지 핵무기나 만들면서 주민들을 굶겨 죽이는 깡패국가로만 인식하고 중국에도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만약 ‘외교’라는 형식으로 문제를 풀고자 한다면 최소한 협상의 상대 측에 대한 무차별 비난이나 타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일방적인 가치판단에 앞서 그들이 어떻게 국익을 구현해 나가는지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근거는 무엇인지 심도 있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북ㆍ중 관계의 향후 방향에 대한 좀 더 진지한 논의를 기대해본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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