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한 전직 이사(주인공 ‘나’)에게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유력한 헤드헌팅 회사의 면접, 곧 ‘최후의 패자부활전’ 참가 제안이다.
소설 ‘헤드 헌터’는 ‘나’의 실직과 그 이후, 헤드헌터 회사의 취업 면접과 연수 프로그램 경쟁자들이 벌이는 ‘호두 속 같은 게임’의 과정을 추리소설의 얼개에 담은 작품이다. 나이 든 구직자들이 면접관 앞에서 경험하는 불안과 긴장, 경쟁자들과의 신경전, ‘최후의 기회’라는 절박성 등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는지 그 심리와 행위를 경쾌한 듯 섬뜩하게 그리고 있다.
면접을 거쳐 선발된 16명의 후보군은 외딴 섬에 갇혀 일주일간의 합숙 연수를 벌인다.
“사교 정찬에서는 가장 강한 자, 가장 교활한 자, 아니면 가장 말을 잘하는 자,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지배할 사람을 뽑기 위해 이런 설전을 벌이는 법이다. … 음식이란 위계질서를 세울 핑계일 따름이다.”(100쪽)
그들은 그 위선과 음모의 경쟁 메커니즘 속에서 점점 냉혹하게 변해간다. “그들은 ‘당신은 개자식’이라는 말만은 결코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 그 같은 의미를 노출하기 위해 참으로 능란하고 정묘하며 긴긴 우회의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논쟁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대부분 그런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231쪽)
참가자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기업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벌인다. 금융기법을 동원한 자본 공격과 음해성 소송전 등 살벌한 약육강식의 경쟁은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 치명적인 사태로 치닫고, ‘나’ 역시 쫓기는 처지가 된다.
“무기를 내려놓고 얌전히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호수를 향해. 문명과, ‘대기업’들과, 웃고 있지만 실은 살의를 품은 대면을 향해. 오직 상징적으로만 사람을 죽이는 세상, 물리적으로 해치는 것만 빼고는 뭐든지 할 권리가 있는 세상을 향해… 이제 결심하는 일만 남았다.”(370~372쪽)
이 소설은 2001년 프랑스 추리문학상 대상을 탔고, ‘기업 스릴러’라는 타이틀을 달고 번역됐지만, ‘추리물’이라는 레테르에 담긴 하위장르적 선입견을 염두에 둔다면 그 분류는 옹색하고 부적절하다. 작가 미셸 크레스피는 심리학자이자 프랑스 몽펠리에 제3대학 사회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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