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사회적 존경회복’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 계획은 훌리건의 나라로 전락한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그가 발표한 존경행동계획(Respect Action Plan)에는 반사회적 행동을 추방하고 공동체정신과 존경이 넘쳐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 제시돼 있다. 그러나 이웃에 피해를 주는 가구를 3개월간 강제 퇴거하거나 불량청소년을 방치하는 부모에 벌금을 물리는 식의 처벌정책은 반감을 부르고 있다.
실현 불가능한 비현실적 정책이라는 비난과, 개인의 사생활에까지 간섭하는 유모국가(乳母國家ㆍnanny state)를 만들자는 거냐 하는 식의 반론이 거세다. 더욱이 블레어는 이 계획을 홍보하려고 방송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의 뺨을 때린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샀다. 이래저래 블레어는 성공하기 힘들어 보인다.
●반론 거센 블레어의 정책
그러나 블레어가 성공하지 못한다 해서 그 정책까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도를 지켜보며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였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블레어가 문제삼은 것은 한 마디로 건달문화(yob culture)다. 우리는 그보다는 몰염치문화가 더 심각한 것 같고 이에 더해 건달문화가 점점 번져가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동방예의지국, 선비의 나라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일제시대 이래 격동기를 겪으면서 훌륭한 정신적 자산과 전통이 훼손되고 단절됐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지상주의와 천민자본주의는 예의와 염치,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양보를 밀어내 버렸다.
서양의 고유한 전통과 미덕인 것처럼 강조되고 인용되는 공동체사회나 관용의 정신은 이미 동양의 유교적 전통에 들어 있던 것들이다. 선비들이 명심해야 할 덕목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었다. 스스로를 닦고 난 연후에 남을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레주라는 말을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자신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하라는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 待人春風)의 자세를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 거짓과 부정직을 일삼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몰염치현상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고 게임의 룰을 어기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비루(卑陋)하고 조야(粗野)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공인일수록 더 거짓이 없어야 하는데, 손바닥 뒤집듯 쉽게 말을 바꾸고 잘못을 주변여건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정직과 윤리에 관한 우리 사회의 눈높이가 최근 몇 년새 크게 높아졌는데도 그걸 모르거나 둔감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구성원들이 저마다 예의와 염치를 지키고 정직하려 애쓰지 않는 사회는 국제적으로 존중ㆍ존경받을 수 없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무역대국이며 산업화 정보화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초고속으로 압축발전한 나라인데도 그 위상에 걸맞은 국격(國格)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유모국가라는 말을 했지만 유모적 행태로 따진다면 우리의 경우는 더하다. 관과 각종 단체가 주도하는 계몽캠페인은 전국민을 유아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숱한 머리띠와 어깨띠, 정직과 반성을 선서한 수많은 손바닥의 다짐은 구호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연초만 되면 상식과 원칙을 강조하며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성 논설이 여전히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문제는 몰염치ㆍ거짓
게다가 다중과 집단의 힘에 의존하는 최근의 몰개성적 그루피현상은 나와 남의 적대적 구분과 배타성을 키워 정직하고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2002 월드컵과 효순ㆍ미선양 사건 이후 사람들은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오고 아무 일에나 촛불을 켜 든다. 맹목적 열광과 도취의 유사파시즘적 분위기라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공동체정신의 회복은 사회적 분열의 원인을 점진적으로 제거해 나갈 때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례가 많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 존경의 회복이 문제가 아니라 그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상황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