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작은 정부를 주문한다. 시장의 논리에 맡기면 모든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불필요한 규제나 통제를 거부한다. 강력한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시장이나 자본의 폐해를 자못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쟁 속에서 ‘시장’이나 ‘국가’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시민’이나 ‘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묘연하다.
벤자민 바버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의 ‘강한 시민 사회 강한 민주주의’는 ‘시민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장과 국가 사이에서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정치학자이면서 ‘민주주의 연대’ 공동 의장을 맡는 등 시민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저자의 활동을 그대로 반영한 듯, 이 책은 다양한 이론과 실천적인 지침으로 가득하다.
바버 교수에 따르면 자유주의자들은 시민 사회를 단순히 사적인 영역이자 시장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적인 삶이란 오직 자발적이고 계약적인 관계에 근거한 것이며, 이해 관계와 상품 그리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수행하는 거래의 연속체이다. 시민 사회의 핵심 행위자 역시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이다.
반대로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갖다 버린 사회적 연대의 부활에 목숨을 건다. 계약이나 자발적인 선택을 통한 연합보다는 가족, 종교 공동체, 인종 등과 같이 인간에게 원래 귀속되어 있는 유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관계를 해치는 시장적 가치는 당연히 경계의 대상이다.
저자는 순응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 모델이나, 시장에 대한 정부의 영향을 제거하려는 자유주의의 모델을 다 같이 비판하면서 그 위에 ‘다원적인 시민적 공동체’라는 개념을 설정한다. ‘공적 영역(정부)과 사적 영역(시장) 사이의 공간’에 있는 시민 공동체는 ‘그 둘을 매개’하면서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그 둘을 조화시킨다.
자발적인 사회 참여 의식으로 무장한 시민과 시민 공동체가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강건한 민주주의에서 시민 사회가 정부의 살아 있는 몸체인 것처럼, 정부는 시민 사회의 팔이’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시민 문화가 궁극적으로 상업의 굴레를 벗’는다. 이런 사회를 위해서는 사회의 목표와 발전 방향을 인식하는 시민들이 집중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성’이 가장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또 살찌우는 것 역시 시장이나 정부가 아니라 바로 이런 시민정신으로 무장된 시민 사회라는 것이다.
이 책은 비록 미국의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긴 하지만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유용한 제안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유익하다. 저자는 정부가 시민 사회의 육성을 지원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로 국내 생산 촉진과 노동 시장 보호, 봉사와 봉사자 훈련 프로그램 강화, 자유로운 다원주의 사회의 토대가 될 예술과 인문학 지원 등을 들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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