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의 실체가 거의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아직 혼란스럽다. 이 사건이 워낙 전문가 영역이고 학계, 정부, 언론이란 권위 집단이 개입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전문가 집단들이 각기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진실을 은폐한 채 자신의 잘못이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학계, 청와대, 정부, 언론이 서로 진실 공방을 벌이고 책임 전가를 하면서 그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전문가 집단 간의 진실 공방과는 관계없이 황 교수에 대한 기대와 지지율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건의 실체가 점점 드러날수록 학계나 청와대나 언론 모두 자질과 윤리 면에서 별로 떳떳하지 못한 집단들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그리고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들이 이렇게 모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조직일까 하는 탄식도 나왔다.
우선 황 교수의 난자 채취 과정의 비윤리성과 논문의 과장 내지 조작 행위는 학자의 윤리에 어긋나는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에 대해선 전적으로 황 교수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다만 논란이 많은 그의 줄기세포 바꿔치기 주장은 검찰 수사의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전문가 집단도 큰 책임
그런데 국내 학계는 과연 무엇을 했나. 황 교수팀이 그렇게 학문적 범죄를 저지르며 무리하게 앞서갈 때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용기 있고, 양심 있는 학자는 왜 없었던 것인가. 모두가 황우석 신화에 빠져 있었던 탓인가. 신화를 극복하지 못하는 과학이 제대로 된 과학인가.
황 교수 논문 조작 사건은 우리 학문 공동체의 자율적 통제력이 부족함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학술원은 허수아비인가. 언론이 먼저 이 사건에 문제 제기를 한 것에 대해 학계는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해야 한다.
또한 청와대와 정부가 잘못하고 책임질 부분도 크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도 황 교수 사건의 피해자인 척하고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다. 그들은 황 교수팀의 연구과정과 성과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수백 억 원의 국민 세금만 퍼다 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황 교수팀을 전폭적으로 밀어준 국가적 사업이었는데, 고작 청와대 보좌관 한 명만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소위 황금박쥐팀 모두가 책임질 일이다.
언론은 황 교수 사건의 공모자이자 공로자이다. 사실 확인과 진실 보도의 의무를 지키지 못하고 황우석 신화만을 키워 온 점에서 언론은 이 사건의 공범자이다.
언론이 뒤늦게나마 탐사 보도의 힘을 보여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그 탐사 과정에서도 언론사들은 제각기 진실을 외면하고 취재와 보도 윤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잘못을 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 경쟁 언론사들의 잘못만을 비난하는 보도 자세는 반성해야 할 점이다.
●관리시스템 점검 계기돼야
황 교수의 조작 논문에 세계 과학계가 속았고 대통령과 청와대도 속고 언론도 속았다. 그러나 그 많은 전문가 집단들이 이 희대의 사기극의 피해자들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교수 한 명에게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 속아 넘어갈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전문 영역이고 누가 전문가란 말인가.
황 교수 사건은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의 능력과 양심의 부재, 그리고 전문가 관리시스템의 허술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전문 영역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이렇게 허술한 체계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 집단은 반성해야 하고 우리의 전문성과 윤리성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봐야 한다. 그것이 황 교수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현택수 고려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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