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신화’의 붕괴를 보며 마음 편할 사람이 있을까. 낙담과 실망을 느끼거나, 허탈하고 착잡한 심경에 젖거나, 실소를 금치 못하거나, 분노를 느끼는 등 저마다 감회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웃으며 박수치는 사람은 없다. ‘황우석 신화’는 그만큼 황홀하고 달콤한 꿈이었다.
과학적 진실과 함께 신화는 낡은 기둥 몇 개만 남긴 채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다. 무너진 흙더미를 뒤지다 보니 가운데가 꺾여 넘어진 굵은 기둥 하나가 눈에 띈다.
단단한 철근 콘크리트 기둥에는 난치병 환자들과 가족의 고통이 군데군데 자갈로 박혀있다. 그러나 철근은 역시 국민적 열광이란 도가니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황우석 신화’의 어떤 요소가 철광석을 그냥 녹일 정도의 열기를 끌어냈을까.
●겉만 번쩍이는 문화론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젓가락 기술’이다. 인간 난자는 다른 동물 난자와 달리 막의 표면이 말끔하지 않고, 막이 얇고 끈적거려서 다루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인간 난자를 자유롭게 다루는 솜씨에 감탄한 외국인들에게 황 교수는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쇠 젓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에 남다른 손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젓가락 기술론’이 국민적 열기에 불을 붙였다. 똑 같은 ‘세계 최초’의 업적이더라도 ‘포크 기술’이나 ‘나이프 기술’이었다면 이런 열광을 부르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문화론이 그렇듯, ‘젓가락 기술론’도 문학적 통찰과 상상력의 금박이 입혀져 있을 뿐, 알맹이는 없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동양적 유교문화 보편의 ‘부끄러움’을 일본 문화의 핵심으로 보았다. ‘젓가락 기술’도 다를 바 없다. 일본에서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젓가락은 널리 사용된다.
그래도 쇠 젓가락은 아니라고? 일본이나 중국의 박물관에도 쇠 젓가락은 있다. 또 짧은 쇠 젓가락과 아주 긴 나무젓가락을 다룰 때의 기술적 우열을 따지기는 힘들다.
더욱이 난자를 가는 침으로 눌러 핵을 짜내는 과정은 모양만 젓가락 질을 닮았지, 실제 침을 움직이는 기계 조작과정은 전혀 다르다. 감각은 통하는 면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감각을 살린 미세 조작 기술이라면 정밀공업의 본산인 스위스나 일본도 한국에 비해 뒤질 바 없을 것이다. 또 왜 초정밀 가공기술에서 한국이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수도 없다.
‘젓가락 기술론’이 위세를 떨친 것은 문화적 독창성과 선진성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해온 한국적 집단의식에 뿌려진 단비였기 때문이다. 실체와 무관하고, 애초에 굳이 확고한 상관관계를 가질 필요도 없는 이데올로기였다. 우리의 집단의식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수많은 ‘복음’의 하나였다.
‘젓가락 기술론’만이 아니다. 우수한 식품임에는 틀림없지만 왜 굳이 김치가 세계의 발효식품을 모두 누르고 홀로 우뚝 서야만 직성이 풀릴까. 콩을 발효시킨 된장과 간장이 재료인 콩의 식생과 직접적 관계가 있고, 대륙에서 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간 것이 분명한 데도 왜 우리 장류가 가장 우수해야 할까.
최고(最古), 최고(最高)에 집착하는 비슷한 사고방식은 겨우 일본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2000년 일본을 흔든 구석기 유물 날조사건도 일본 열도의 구석기 연대를 동북아 최고(最古) 수준인 70만년 이전으로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집단 콤플렉스에서 비롯했다.
●집단 강박에서 벗어나자
오랫동안 중국 중심의 동북아 문화권 변방에서 살아온 일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문화 통로로서, 또 중간 가공자로서 이점을 누려온 우리는 그런 의식에 젖을 이유가 없다. 최고, 1등에 대한 강박관념만 버리면 보편적 문화, 과학기술에서 뒤처지지만 않아도 행복한 시민이 될 수 있다. 2등만 해도 아래가 아득하다.
‘황우석 신화’의 붕괴와 함께 우리의 강박도 함께 풀려 나가길 기대한다. 현재와 같은 토양에서 ‘만들어진 전통’은 포퓰리스트에게나 도움이 된다. 그것을 이번 사태의 교훈으로 삼고 싶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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