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이 12일 오후 출입 기자들에게 ‘원망스런 고춧가루-우리당 대변인 노릇하기 정말 힘들군요’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11일 청와대 만찬에서의 노무현 대통령 탈당 발언을 보도한 언론에 대한 불평과 탄식이 주 내용이었다.
전 대변인은 “보도는 대통령 탈당을 중심으로 한 것과 당청간 이해와 수습에 강조한 것으로 나뉘었는데 대통령 탈당이라는 ‘악화’가 당청의 이해와 수습이라는 ‘양화’를 구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청와대 만찬의 실체적 진실은 대변인이 밝힌 내용(이해와 수습)”이라고 강조했다.
전 대변인은 또 “어느 누구인가 대통령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왜곡하고 확대 해석해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일부 언론에 흘렸다”며 “여권 전체의 심기일전에 고춧가루를 뿌린 격”이라고 대통령 탈당 언급을 언론에 전한 일부 참석자를 겨냥했다. 결국 요지는 “언론이 왜곡돼 전달된 말만 듣고 엉터리 기사를 썼다”는 얘기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기자들은 11일 밤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만찬 석상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취재를 해 노 대통령이 탈당 문제를 언급한 사실을 확인한 뒤 기사화했다.
“내가 발표한 대로 쓰지 않았으니 오보”라는 것은 언론사의 취재노력과 판단 능력에 대한 모욕이다. 전 대변인 주장 대로 “당청 관계는 수습됐고, 대통령 탈당은 과거완료”라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찬 직후 “탈당 관련 언급은 없었다”고 발표한 것은 여당 대변인 입장에서 파장을 막기위해 그랬으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발언 내용이 확인된 마당에도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당청 관계에 고추가루를 뿌린 사람을 굳이 찾는다면 공개석상에서 탈당을 운운해 파문을 일으킨 노 대통령일 것이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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