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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함백산 눈길 산행 "아련한 순백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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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함백산 눈길 산행 "아련한 순백의 추억"

입력
2006.01.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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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동네 태백(太白). 산은 깊고, 땅은 높다. 냇물이 수백 굽이 치고 첩첩의 산과 수십 길 절벽이 가로막는다는 정선과 영월을 지나서 다시 하늘로 더 오르고 또 올라야 만나는 땅.

이른 새벽 영하 15도가 넘는 태백의 한기에 얼어 붙었던 차는 시동을 걸자 연신 쿨럭거린다. 엄동설한에 새벽길을 나선 것은 함백산(1,573m)에 오르기 위해서다. 많은 이들이 태백산은 알아도 그 바로 옆의 함백산은 잘 모른다. 태백산(1,566m) 보다 더 높고, 남한에선 한라, 지리, 설악, 덕유, 계방산에 이어 6번째로 높은 산인데도.

함백이 품은 땅 속엔 수억만년의 시간을 농축한 새까만 석탄이 가득이다. 탄광으로 유명한 사북, 고한도 다 함백의 품안에 있다.

함백산은 그 높이에 비해 오르기가 쉽다. 정상에 통신 기지국이 있어 꼭대기까지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 나 있다. 또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고갯길인 만항재도 함백산을 가로지르고 있어 접근이 쉽다.

하지만 한겨울이면 눈과 얼음 때문에 문명의 이기인 차도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체인을 몇 개씩 끊어 먹고 빙판에 미끄러져 차가 몇 바퀴 돌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함백산에 또 새로운 길이 뚫렸다. 태백 시내에서 서학골을 지나 만항재 정상으로 이어지는 왕복 4차로의 포장길이 지난해 완공됐다. 도로도 넓고 제설작업도 원만히 이뤄져 한겨울에도 쉽게 오를 수 있게 된 것.

도로가 난 서학골 일대는 폐광된 동해 광업소가 있었고 지금까지도 만 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던 산골이었다. 이 곳에 슬로프 16면의 스키장과 27홀의 골프장이 조성되는 서학레저단지가 2008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중이다. 상전벽해다.

오래 전 이곳에 살던 산골 사람들이 장을 보기 위해선 이 산길을 타고 올라, 함백 - 태백의 백두능선을 타고 사길치 – 내뜰 - 곰넘이재 등을 넘어 경북 봉화의 춘양까지 가야만 했다. 산에서 캔 더덕과 밤새 짠 삼베를 지게에 잔뜩 짊어지고 한나절 산을 타고서는 춘양장에서 쌀과 무명, 소금을 바꿔 오곤 했다고 한다. 차도 헐떡이는 이 산길을 한 짐 지고 올랐다니. 삶이란 그렇게 녹록치 않은 것임을….

만항재와 맞닿은 곳에 차를 세우고는 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위는 이미 여명으로 밝았고 동쪽에선 붉은 빛이 번져 오르고 있었다. 발걸음이 절로 재촉한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시야가 뚫렸다.

가히 백두대간의 큰 형님답게 주위의 납작 엎드린 산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수십 수백의 산능선 물결은 쌓인 눈과 새벽 기운이 더해져 농담, 명암의 조화가 신비롭다.

정상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주목 군락지가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들이 몸체만 남아 허공을 가리키고 있다. 태백산의 주목 군락지에 규모나 아름다움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곳이다. 유난히 강원도에 눈이 귀했던 이번 겨울, 주목에 핀 서리꽃이라도 기대하고 왔는데 메마른 날씨는 이 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함백산 정상에 섰다. 북으로는 은대봉을 거쳐 두문동재까지 백두대간 능선이 이어지고, 동으로는 태백 시내가, 서로는 정선이 눈에 들어온다. 해 뜨기 직전의 그 바람, 그 한기가 매서웠지만 대간의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 했다.

고한에서 만항재를 타고 함백으로 오르는 길 초입엔 조용한 절 한 채가 있다. ‘숲 우거진 봉우리가 해를 가려 속진도 멀리 하니 정결하여 더러움을 모른다’는 천년 고찰 정암사다.

욕망이 흥청대는 카지노를 지나, 아직도 붉은 철분과 검은 석탄의 흔적이 남은 개울을 따라 가다 만나는 절이다. 오니(汚泥) 위에 핀 연꽃이랄까. 세속의 한가운데 피어난 정토로서 정암사는 지나온 풍경과 대비돼 더욱 정갈해 보인다.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645년)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 유학 갔다가 돌아오면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들여와 양산 통도사, 설악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월의 법흥사와 이 곳 정암사 등 5곳에 나눠 모셨다.

절 마당의 개울 건너면 아담한 ‘적멸궁’이 있다. 일반 절로 치면 대웅전인 이 건물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보니 단 위에는 부처상이 안 계시고 노란 방석 뿐이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니 따로 부처상이 필요 없기 때문. 적멸궁 위의 산자락에 세워진 수마노탑에 그 진신사리가 모셔졌다.

태백=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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