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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창 교수의 마음건강 365] (2) 게으름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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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창 교수의 마음건강 365] (2) 게으름도 병

입력
2006.01.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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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긴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활의 틀이 없어지면서 게으른 생활 습관에 빠지기 쉬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나태한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심각성을 모르는 자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들은 그야말로 속이 터집니다.

22세 된 B(여)양은 매우 게을러졌다는 것을 이유로 부모에 이끌려 진료실을 찾았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공부에만 몰두하며 큰 문제없이 지냈으나, 대학 진학 이후에 점차 게을러지면서 제 때 씻고 먹는 것을 소홀히 했고, 새벽까지 컴퓨터, 인터넷에 몰두하다가 낮에는 늦게까지 자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수업에 늦거나 빼먹는 일이 허다했으나, 벼락치기 공부로 어느 정도의 성적은 받아왔습니다. 때때로 B양은 밤에 외출하여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다 들어오는 일도 있었고, 인터넷 쇼핑에 몰두하기도 했으나 이러한 행동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B양의 생활과 성격 등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심리검사를 시행한 결과 B양은 가벼운 우울증 상태에 있으며, 밑바탕에는 기분순환장애 또는 양극성장애 2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적절한 상담과 약물치료를 통해 B양의 게으르고 불규칙적인 생활 습관은 상당 부분 호전되었습니다.

그저 천성이 게으른 것으로만 생각하고, 큰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치료 받아야 할 게으름을 방치한 채 일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으름을 증상으로 하는 마음의 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번째, 우울증 입니다. 생활에 대한 의욕과 흥미를 상실하며,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자연히 게을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마음의 병으로부터 생길 수 있는 증상입니다. 심한 우울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요우울증, 그리고 우울증과 조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양극성장애(조울증)가 대표적입니다.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선뜻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 형태의 우울증들입니다. 가벼운 우울증이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기분부전증이 있습니다. 기분부전증 환자들은 자살을 생각할 만큼 우울증상이 심하지는 않으나 만성적으로 무기력감을 느끼고, 자신감이 없고, 뭔가 결정하기를 어려워합니다.

때때로 자기가 하는 일에는 매우 열중해 일벌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게으르고 생산성이 떨어져 있으며, 전체적인 삶의 질이 낮습니다.

B양에게서 의심되는 것과 같은 양극성장애 2형이나 기분순환장애에는 일반적인 조울증과 달리 경미한 형태의 조증(경조증)만이 있어 ‘큰 사고’를 치지 않기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되는 일이 적어집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우울증과 경조증으로 인해 삶의 굴곡이 심하고, 대인관계와 사회적 기능이 손상됩니다.

때로 열심히 일을 해서 반짝하는 능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정작 해야 할 일은 미룬 채 다른 일에 더 열중하는 일이 많고, 우울증의 시기가 자주 나타나 게으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됩니다.

두번째, 정신병의 음성증상이 있습니다. 정신분열병의 급성기에는 환각이나 망상, 이상한 언행과 같은 양성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반면, 만성기에는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며,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음성증상이 두드러집니다.

단순형 정신분열병이라고 해서 아예 급성기 양성증상이 없이 음성증상부터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성증상이 주된 증상인 경우 이를 단순한 게으름으로 생각하여 병원을 찾지 않거나 치료를 중단하기 쉽습니다.

정신병으로 나타나는 게으름은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병이 진행되어 사회적인 기능을 점점 더 손실하게 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세번째, 성격장애에서도 게으름이 나타납니다. 정서상태와 대인관계가 불안정하고, 충동조절을 잘 못하는 성격장애 환자들은 우울증에 쉽게 빠지고, 게으르거나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한편, 앞서 설명한 기분부전장애는 우울성 성격장애로, 양극성장애 2형, 기분순환증은 정서불안성 성격장애로, 단순형 정신분열병은 정신분열형 성격장애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눈에 띄는 정신 증상 없이 성격적인 특성에서 오는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이 지나치다 싶으면 혹시 치료 가능한 마음의 병 때문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게으름은 죄악’이라는 격언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게으름은 치료 받아야 할 병’입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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