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언급한 대로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임기 말 탈당을 선택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등장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모두 대선을 수개월 앞두고 여당 당적을 버렸다.
이들이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하나같이 ‘공정한 대선 관리’ ‘초당적 국정운영’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연이은 측근 비리 의혹 등 어려운 정치상황 속에서 레임덕이 겹치며 수세에 몰리자 마지막 카드로 탈당을 택했던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2년 9월 민자당을 떠난 것은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였던 YS와의 갈등이 주된 이유였다. YS는 3당 합당 때의 내각제 밀약을 깨고, 1992년 총선을 자신이 진두지휘 하겠다고 나서는 등 진작부터 ‘노태우 밀어내기’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은 당내 파워 게임에서 민정계가 YS 민주계에 밀린데다, 사돈인 SK 그룹에 대한 이동통신사업허가 논란이 겹치자 탈당하고 거국 내각을 구성했다.
YS가 1997년 11월 신한국당을 탈당했을 땐 한보 사태와 아들 현철씨를 비롯한 민주계 실세들의 잇따른 구속,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지원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1996년 12월 노동관계법 국회 날치기 처리 이후 시작된 레임덕에 가속도가 붙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검찰이 당시 국민회의 대선 후보였던 DJ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하자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가 노골적으로 YS의 탈당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당 대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YS 인형의 화형식을 한 게 탈당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DJ는 대선을 7개월 앞둔 2002년 5월 6일 막 불거지기 시작한 세 아들의 각종 비리 연루 의혹에 대해 사과하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최측근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지 사흘 만이었다. ‘정현준_이용호_진승현 게이트’로 이어지는 연쇄 권력형 비리들로 야당에 정국 주도권이 넘어간 상황에서의 고육책이었다.
DJ의 선택이 막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를 보호하려는 고려였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한나라당은 “위장 탈당” “노무현 길터주기” 라고 비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한 번 탈당한 바 있다. 집권 7개월 때인 2003년 9월 ‘구(舊) 정치세력과의 결별’을 내세우며 민주당 당적을 버리고 다음 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가 재임 중 두 번 탈당하는 기록을 세울지도 관심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