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1일 이른바 ‘영장 없는 비밀도청’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 “국내 도청 프로그램을 조사하기 위한 의회 청문회는 민주주의를 위해 유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의회가 추진중인 청문회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처음 밝힌 것으로 청문회 개최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던 이전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말 송년 기자회견에서는 “도청 프로그램에 대한 의회 청문회는 우리의 적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말해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미 언론들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부시 대통령이 결국 체념, 청문회를 감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의회 청문회 개최의 최대 장애물이 제거됐기 때문에 미 상원을 중심으로 한 청문회 준비는 한층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월초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청문회에서는 ‘영장 없는 비밀도청’이 과연 대통령의 권한에 포함되는 지, 또 기본권과 국가안보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취해야 하는지를 놓고 격렬한 법리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 대통령은 9ㆍ11 테러 직후 의회가 ‘테러에 맞서 모든 필요하고 적절한 힘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하는 결의를 한 것이 비밀도청의 법적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회의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민주당에서는 영장 없는 비밀도청 승인은 부시 대통령의 명백한 권한 남용이기 때문에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격앙된 목소리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비밀도청에 대한 의회 청문회 개최는 확정적이지만 실제 청문회 과정이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켄터키주 루이스빌을 방문, 지역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의회 청문회의 원칙적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도 “(청문회 과정에서) 적들에게 우리의 국가기밀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 이것이 청문회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조건’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청문회 진행 방식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 상원의 청문회는 실제로는 상원 법사위와 정보위 등 두 곳에서 각각 별도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정보위에서는 이미 ‘비공개’를 청문회 원칙으로 상정하고 있다. 국가기밀 노출에 대한 우려를 감안, 한번 거르겠다는 뜻이다. 법사위는 아직까지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청문회 과정에서 공화당이나 정부측으로부터 비공개 요청을 받게 될 경우, 이를 둘러싸고도 한차례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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