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단일 사업장의 최고경영자(CEO)인 김동진(사진)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이제 현대차 노조도 임금 동결을 선언할 때가 됐다”고 밝혀 노동계 반발 등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 GM의 전철을 밟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따라 잡기 위해서는 ‘저효율 고비용 구조’가 지속돼선 안 된다는 게 김 부회장의 소신이다.
김 부회장은 11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무역협회 주최 조찬강연에서 “GM의 쇠락은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미래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GM의 경우 30년만 근무하면 회사에서 평생 본인과 가족의 의료비를 부담하고, 구조조정 및 공장 해외 이전시엔 노조의 동의를 얻도록 한 노조와의 협약들이 결국 위기를 부른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도요타는 50년 동안 무분규 협상을 이어가고, 4년째 노조 스스로 임금을 동결하며 올해 GM을 제치고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정상에 오를 전망”이라며 “이에 비해 우리는 매년 노사 분규를 겪으며 과도한 임금 인상이 이뤄지고 있고 최근 현대차 노조의 요구사항은 GM의 사례와 너무나 흡사해 우려되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대차 노조는 연평균 임금이 5,800만원인데다 회사에서 퇴직금 등으로 적립하는 600만원까지 포함하면 근로자 1인당 회사 부담 비용이 6,400만원이나 된다”며 “중산층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는 만큼 임금 동결을 선언할 때가 됐고 그럴 경우 현대차는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이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는 ‘임금 동결 선언’을 공개 요구하고 나선 것은 그 만큼 절실한 위기 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현대차는 1995~2005년 단 한차례도 빠짐없이 노사 분규를 겪었고 매번 물가상승률 보다 2배 이상 높은 임금인상률을 기록했다.
반면 생산성 향상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의 생산성을 비교 분석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가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총 시간은 32.3시간으로 GM의 23.6시간, 도요타와 혼다의 20.6시간보다 훨씬 길다.
최근에는 국내 공장 생산성이 해외 공장 생산성에도 추월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베이징현대차 공장의 시간당 생산 대수가 68대를 돌파하며 현대차 아산공장의 시간당 생산대수 63대를 제쳐 충격을 주었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것도 현대차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과도한 의료비 부담에 따른 고비용 구조를 타파하지 못한 GM은 결국 시장의 변화에 발 맞춘 신제품을 적절하게 내놓는 데 실패하며 80년대 43.3%에 달했던 미국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엔 26.2%까지 추락했다.
반면 도요타와 혼다, 닛산 일본의 ‘빅3’는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 철저한 현지화와 안정적인 노사 관계 등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도요타의 2004년 순이익은 2000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조1,620억엔을 기록, 전세계 제조업체 중 1위에 올랐다.
18일 집행부 이ㆍ취임식을 앞두고 있는 현대차 노조는 김 부회장의 발언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론 새해 벽두부터 노사협상에 중요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원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지만 아직 회사가 공식적으로 제안해 온 것도 아니어서 발언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동차 산업은 수출 1위, 무역흑자 1위의 국가 산업이라는 점에서 현대차 노사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임금 동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품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사가 함께 노력하는 진정한 도요타 문화를 배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고품질 저비용 구조로 바꿔 마련된 재원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회사도 안정된 고용을 보장하는 등 선순환 구조의 노사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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