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미에빌의 소설 ‘응시(Details)’를 읽어 보면 하얀 벽면을 바라보다가 보아서는 안 되는 무엇(괴물)을 보게 돼 평생 쫓기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는 극단적인 경우겠지만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또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두운 밤에 방의 평이한 물체를 보면서 그 안에서 무서운 괴물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의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 더하기 상상력에서 기인하는 일일 것이다.
패턴을 인식하고 형태를 상상하는 능력은 고대문명을 성립한 인간의 역사에 잘 나타나 있다. 자연에서 일정한 패턴 즉 원과 삼각형, 사각형 등의 원시적 도형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이용하면서 사고의 범위를 확대한 흔적이 많은 고대문명의 유적에서 발견된다. 고대인이 만든 많은 거대 구조물이 기본 도형에 형상의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고의 정점이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자연계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다루는 깨끗한 형태의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예를 들면 나뭇잎의 경우 아무리 현미경을 들이대고 확대해 봐도 맨눈으로 보는 복잡한 그물모양의 줄기가 나타난다. 뚜렷하게 대표하는 도형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복잡한 형상을 연구하는 수학의 분야를 프랙탈(fractal)이라 한다.
1960년대에 ‘영국의 해안선은 얼마나 긴가’라는 질문으로 이와 같은 복잡한 형상을 연구하기 시작한 만델브로트(Mandelbrot)는 해안선의 경우 확대해서 들여다 볼수록 길어지므로 종래의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는 다룰 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개념을 프랙탈이라 명명한다. 프랙탈의 형상은 수학적으로는 풀어낼 수 없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형태가 보인다.
재미있는 일은, 그 이전에도 이런 복잡한 형상에 대한 연구는 존재했고 만델브로트의 프랙탈이란 이름 이전에는 괴물 곡선(Monster curve)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도저히 일정한 형태를 뽑아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벽지에서 괴물의 형상을 보는 인간의 상상력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수학자들이 근래에 들어서 인식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기하학적 형태를 인간은 아무런 교육도 받지않고서도 인식해 낼 수 있다는 의미겠다.
아쉬운 점은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상상력이 있어서, 똑같은 물체나 현상을 보더라도 각기 다른 괴물을 본다는 것이다. 연말부터 연초까지 여러가지 일로 시끄러운 모양이다. 현상과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인 나라에서 사는 축복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가 혹시라도 나만의 괴물을 보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돌이켜보는 것도 한해를 시작하는 시기의 유용한 자기성찰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주환 연세대 토목공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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