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 새해를 맞아 정치권이 꿈틀거리고 있다. 5월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파는 생존과 승리를 위한 몸부림을 시작하고 있다. 개각 문제로 여권이 홍역을 앓은 것도, 야당이 사학법 장외투쟁을 놓고 고민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 격류를 헤쳐나갈 주연은 역시 대선주자들이다. 본보는 대선주자의 비전과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읽을 수 있는 집중 인터뷰를 한 주에 두 차례 게재할 예정이다.
대담=이영성 정치부장
(질문을 막으며) “내가 먼저 이야기하자. 한나라당이 황우석 파문에 대해 국정조사를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려면 한나라당이 국회에 돌아와야 한다. 또 박근혜 대표는 소장 과학자들이 황 교수 논문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자 좌파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그 발언에 대해 뭔가 말해야 한다.”
_사과를 요구하나.
“유감 표명은 있어야 한다.”
_사학법과 관련, 전교조의 사학장악 논리가 먹혔다. 그만큼 거부감이 크다는 얘기인데.
“전교조도 그 점을 주목하고 되돌아봐야 한다.”
_현안을 묻겠다. 청와대가 유시민 의원의 장관 내정을 ‘차세대 육성론’으로 설명했는데.
“유 의원에 대한 평가는 않겠다. 다만 차세대, 차차세대 언급은 불필요했다. 국민 사이에 실망스럽다는 분위기가 있는데 청와대가 맞불을 놓는 듯 얘기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_초ㆍ재선 의원들이 개각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 의장을 바로 장관으로 내정한 것을 보고 초라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 당의 독자성과 자존심이 상처 받은 측면을 이해하지만 지금은 수습해야 할 상황이다.”
_초ㆍ재선 의원들이 대통령 면담, 이해찬 총리의 책임론까지 거론했다. 동의하나.
“문제제기는 참으로 이해가 가는데, 권력투쟁적 양상으로 가지는 않길 바란다.”
_청와대는 인사권이 대통령 고유권한이라고 말한다.
“인사권은 업무지휘권의 핵심이다. 그 결정권한은 인사권자에게 있다. 당은 선거와 정치의 중심이고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_연초 ‘실용을 주장한 분들이 좌초했다’고 했는데.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 이후 고통스런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는 중산층과 서민의 당, 새로운 정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부동산투기가 참여정부에서 두 차례나 일어났다. 오죽하면 계급장 떼고 붙자고 했겠나. 경제부처가 건설경기 연착륙을 얘기하면서 부동산을 풀어버린 게 문제였다.”
_그게 실용주의의 과오라고 할 수 있나.
“나도 공허한 관념주의를 반대한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라며 실용주의라는 간판 아래 국민과의 약속을 버려도 좋은 것이냐를 따지는 것이다.”
_부동산 말고 버린 것이 무엇인가.
“사학법 처리 후에 당내에서 시원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 전까진 ‘우린 집권야당이다’는 자조가 있었다. 비정규직 보호법안, 금산법도 2년 가까이 끌었다. 결론을 내야 한다.”
_여론조사에서 85%가 경제, 15%만이 개혁이 중요하다고 답한다. 지금 개혁을 외치는 것은 흐름과 맞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아직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할 부분이 많다. 국민은 새로운 경제발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도약한 과정을 참고하고 벤치마킹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루고 따뜻한 시장경제를 만드는 게 가야 할 길이다. 그 첫걸음으로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다음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경제부처 책임자들은 시장 신봉주의자들이다. 시장은 확대, 발전돼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실패하는 부분이 있다.”
_현 정부는 노사정위조차 정상화 못하고 있다.
“정책당국에도 문제가 있고, 노동운동 지도부도 내부 강경파에 휘둘리고 있다. 대통령과 여러 번 얘기했는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_당으로 화제를 돌리자. 김 고문이 의장이 돼야 하는 당위는 무엇인가.
“이대로 가면 어렵다. 지방선거도 어렵다. 변화가 필요하다.”
_정동영 고문은 왜 안되나.
“정 고문과 가까운 분들이 주요 당직을 2년간 순환해서 맡아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정 고문이 의장이 되는 건 화장만 고치는 것이다. 김근태가 되면 제품이 바뀌는 것이다.”
_햄릿형이라는 평을 받았었는데 달라진 것 같다.
“절박해서다. 민주화운동 때도 절박하면 공격적으로 갔다. 지금이 고비다.”
_당ㆍ청간 이견이 있으면 또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고 할 건가.
“(웃음) 당시 국민연금 문제는 경제부총리에 대한 것이었다. 경제관료들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엉뚱하게 했다.”
_당시 ‘김근태가 너무 쉽게 꼬리를 내렸다’는 얘기도 나왔다.
“현직장관으로서 맞설까도 생각했다. 정책적 문제제기 였는데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서 정치적 문제로 비화됐다. 대연정 문제 때도 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차이가 없다는 얘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과 장관이 맞서면 정부가 흔들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물러났다.”
_민주당과의 통합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표만을 위해 민주당과 통합을 시도하는 것은 망하는 길이다. 고건 전 총리와 강금실 전 장관,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 등 범양심세력의 대연합이 필요하다.”
_고 전 총리 참여를 얘기했는데, 당이 실용주의자들 때문에 성과를 못 냈다면서 대표적인 실용주의자를 포함하자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손사래를 치며) 그런 건 아니다. 한나라당은 아직 냉전적ㆍ특권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모든 양심세력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_요즘 민주, 개혁보다 경제가 더 중시된다.
“민주화 세력의 8년에 대한 지루함과 미흡한 성과 때문인 것 같다. 체감경기가 잘 살아나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은 것도 이유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우리가 반성하고 새롭게 바뀌면 집 나간 식구들이 돌아올 것이다.”
_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로 지지도를 높이고 있다.
“새로운 경제발전에 대한 바람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명박의 개발독재식 논리가 가능한지, 김근태식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따뜻한 복지가 좋은지 경쟁이 필요하다.”
_유령당원 사태가 벌어졌다. 기간당원제가 민심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기간당원제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보완이 필요하다. 이번에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때 기간당원 의견을 30%로 제한하고 여론조사도 반영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_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나.
“권력구조도 바꾸고 대선ㆍ총선 시기도 맞춰야 한다. 시기는 지방선거 이후가 좋다. 각계 전문가들이 토론을 거쳐 만든 안으로 국회가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_‘김근태 주변에는 운동권이 많다, 운동권에는 나라를 그만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웃음) 저와 민주화운동을 함께 고민하던 분들 상당수가 이미 전문가다. 문용식 한반도재단 사무총장만 해도 성공한 CEO다. 이들이 함께 국가경쟁력과 국민통합을 고민하고 있다.”
■ 달라진 김근태 고문
● 약력
▦경기 부천(59) ▦경기고ㆍ서울대 상대 ▦15,16,17대 의원 ▦전민련 집행위원장 ▦국민회의 부총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 상임고문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의원회관 328호에서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김 고문은 공격적인 질문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질문을 끊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김 고문은 질문을 막으며 “내가 먼저 이야기 하자”며 한나라당의 장외투쟁과 박근혜 대표의 이념공세에 대해 일갈했다.
좀처럼 남에 대한 비평을 하지 않던 그도 “왜 정동영이 아니라 김근태여야 하느냐”는 의도적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했다. 지난 2년간 당이 혼란을 겪고 지지도가 추락한 이유를 ‘정동영계 책임론’으로 정리했다. 자신이 당선돼야 당이 변하는 것이고, 그래야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논리가 뒤따랐다.
그는 국민연금기금 활용방안, 대연정 논란 등 장관 재직 때 노무현 대통령과 입장이 달랐던 상황에 대해서도 “맞설까도 생각했지만 참여정부가 흔들릴까 봐 상처를 감수하고 물러섰다”며 뼈있는 말을 던졌다.
인터뷰가 끝난 뒤 김 고문은 “질문이 너무 공격적이다. 친분을 쌓자는 게 아닌가 보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자신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는 사실에 여유도 생긴 듯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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