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방어를 위한 외환당국의 대응방식이 바뀌고 있다. 예전처럼 마지노선을 정한 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수하던 고전적 방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개입 강도가 덜할 뿐더러, 당국자들은 오히려 환율하락의 순기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수출지원 일변도의 환율정책을 수출과 내수의 균형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외환위기와 같은 유사시를 대비한 달러비축에서 국제수지 균형 도모로 전환하는 조짐이다. 달러가 과잉 공급되는 구조를 달러수급 균형으로 유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11일 외환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ㆍ달러 환율이 작년 말부터 달러 당 30원 가까이 빠지는 급락장에서 당국의 개입물량은 하루 평균 2억 달러 내외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10억~20억 달러는 돼야 시장에 강한 인상을 주면서 방향을 돌릴 수 있으나, 최근 당국의 개입은 그야말로 미세 조정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은 45억 달러 수준이다.
환율 대책도 당장 실탄을 동원하는 방안에서 중장기적으로 달러를 퍼내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는 최근 해외 거주용 부동산 취득을 연내 전면 자유화하기로 한 데 이어, 2011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외환거래자유화 일정도 앞당겨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투자목적의 해외부동산 취득도 수년 내 풀릴 가능성이 높다.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에 대한 위험경고는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 국민들이 오히려 해외로 나가 달러를 더 많이 쓸 것을 장려하고 있는 셈이다.
당국자들은 오히려 환율하락의 순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차관은 “최근 원화절상의 속도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환율하락은 한국경제의 회복세를 반영하고 있고 내수회복 등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외환당국의 이 같은 입장 선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의 원ㆍ달러 환율하락은 원화절상이 아니라, 글로벌달러 약세에 기인한 것인 만큼 일국의 외환당국이 거스르기는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위원은 “요즘 당국의 태도를 보면, 추세적인 환율하락에 대해 사실상 동의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며 “시장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수출 지원을 위해 무리하게 환 방어에 나서는 것이 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한국개발연구원 임경묵 연구위원은 “해외부품 수입이 늘면서 수출이 늘어도 고용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수출경쟁력이 가격으로 결정되던 시대는 끝났고, 수출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수출 호조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면서 구조적인 달러공급 우위에 따른 비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적절한 자본수지 적자(자본유출)를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점진적으로 도모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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