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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잔잔한 감정 표현의 멜로 '사랑을 놓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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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잔잔한 감정 표현의 멜로 '사랑을 놓치다'

입력
2006.01.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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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자가 사랑을 얻는다. 하루에도 수없이 스쳐가는 만남을 용기라는 끈으로 질끈 묶지 않으면 사랑이라는 인연을 쉽게 만나기 어렵다.

사랑을 자신하지 못하는 이에게 누군가와 때론 부대끼고 때론 웃음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헛된 욕망일 뿐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소수를 위한 단어이고, 불행은 다수에게 적용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은 사랑 앞에 머뭇거리고 숱한 사랑의 기회를 놓친다. ‘사랑을 놓치다’는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이런 가슴 아린 상실의 추억을 일깨운다. 그리고 현재 당신의 주변을 맴돌며 사랑을 탐색하는 사람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대학 조정 선수 우재(설경구)는 여자 친구로부터 느닷없는 이별 통고를 받는다. 그는 홧김에 조정부를 탈퇴하고 사랑에 대한 미련만 남긴 채 군복을 입는다.

겉으로는 속 깊은 친구인척하면서 내심 우재에 연정을 품은 연수(송윤아)는 짝사랑에 가슴앓이를 하지만 선뜻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한다. 연수는 마음을 주고 싶어 면회를 가나 눈치 없는 우재는 바득바득 막차를 태워 집으로 돌려 보낸다. 그리고 그렇게 끊긴 인연은 10년 뒤 이어진다.

우재는 여전히 첫 사랑의 생채기가 아물지 않았고, 연수는 우재를 문득문득 떠올린다. 바뀐 것이라고는 주름이 살결을 파고 들기 시작한 30대라는 점과 고등학교 조정 코치와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이혼녀로 각기 살아가고 있다는 것. 둘은 우연히 맞닥뜨리고 오래도록 마주하지 못한 여느 친구처럼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우재는 조금씩 연수에게 끌리고, 연수는 뒤늦은 사랑의 예감에 마음이 달뜬다. 그러나 이 두 남녀, 나이를 먹고 세상의 이치를 웬만큼 깨달았을 만도 한데 사랑에는 여전히 서툴다. 과연 둘은 또 다시 사랑을 놓치게 될 것인가.

첫 눈에 반하거나 순간의 정염에 휩싸여 포옹하는 사랑은 어쩌면 일부만 누릴 수 있는 혜택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 땅의 수많은 남녀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다 진정한 사랑(물론 뒤늦게 알게 되는)을 떠나보낸다.

뜨겁게 타오르는 장작불보다는 미지근한 듯 하다 서서히 데워지는 온돌 같은 사랑은 극적 호소력을 지니기는 힘드나 더 현실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거야 싶으면 잡는 거고 놓치면 후회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랑을 놓치다’는 평범하면서도 보편적이지만 깊은 울림을 갖는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처럼 특별한 악센트가 없어 보이는 영화에 방점을 찍는 것은 두 사람을 휘고 돌며 펼쳐지는 자연 풍광이다. 햇빛이 오글거리는 양수장의 풍경은 사랑에 설레는 우재와 연수의 마음 속을 비쳐낸다. 한적한 시골길의 나무 잎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 노가 가르는 물살의 흐름도 두 연인의 감정변화를 차분히 표현해나간다.

액자처럼 겹쳐지는 연수 어머니(이휘향)의 황혼 로맨스도 평이한 극적 진행에 활력으로 작용하는 에너지원이다. 사랑의 징표로 선물 받은 스카프에 눈이 가려 세상을 저버리는 연수 어머니의 모습은 죽음까지도 감내하는 사랑의 실체를 보여준다.

‘마파도’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추창민 감독은 데뷔작으로 준비한 시나리오인 이 영화를 통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탄탄한 연출력을 선보인다. 그는 등장인물 들의 섬세한 감정을 힘들이지 않고 도드라지게 드러내며, 살랑대는 감정의 물결을 자연스레 담아낸다. 26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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