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겠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10일 발표한 집권 3기 국정의제다. 남은 아랑곳 없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반(反) 사회적 행동이 사회병폐의 원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5월 총선 승리 후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이 입안한 ‘존경(respect) 아젠다’란 이름의 이 계획은 한마디로 ‘훌리건의 나라’를 ‘신사의 나라’로 복원시킨다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정권 지지도를 바닥으로 추락시킨 이라크 전쟁과 같은 정치적 이슈를 희석하기 위해 비교적 이견이 적은 사회적 가치를 들고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남을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사회 감시망을 강화해 테러방지 활동 등 치안을 강화하는 이중의 포석일 수도 있다.
‘존경 아젠다’의 골자는 이렇다. 음악소리를 크게 트는 등 이웃에 피해를 주는 행위가 계속될 경우 각종 재활교육을 받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최장 3개월 동안 집에서 강제 퇴거될 수 있다.
사회복지 수당 지급이 중단되는 등 금전적 불이익도 받는다. 만취나 다른 사람에게 침을 뱉는 등의 무질서 행위, 타인이 위협을 느낄 수 있는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는 ‘on_the_spot fine’ 이름으로 현장에서 벌금이 부과된다. 벌금액은 건 당 40~80파운드(6만 8,000~13만 6,000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버릇없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의무적으로 ‘자녀훈육’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등 자식에 대한 관리 책임이 강화된다.
블레어 총리는 이날 “1930년대 영국은 서로를 존경하는 공동체 정신으로 넘쳐 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응은 냉담하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는 “사회붕괴 현상은 장기적으로 접근해야지 제재나 처벌 같은 단기적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블레어 정부가 인간을 비문명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보수당은 이 프로그램을 ‘조건반사적인 포퓰리즘’으로, 제3당인 자유민주당은 ‘온갖 속임수의 집합체’라고 규정했다. 사회단체에서도 “충격요법” “개인의 사생활을 간섭하는 유모국가(nanny state)”라는 비판이 주조이다.
블레어 총리는 국민의 이해를 얻어내기 위해 전국에 12명의 차관급 인사를 파견하고 지역 경찰과 관리들에게 ‘주민과의 만남(face the people)’ 자리에 적극 참여토록 하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번 정치적 신뢰를 잃은 지도자가 다시 국민의 통합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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