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세계 전략이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에너지 외교는 이들 지역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와 맞물려 더욱 빛을 발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인권과 테러 등으로 미국이 발을 빼는 틈새를 파고 들고 있고 중남미에서는 반미좌파 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의 안보우산에 기댈 수 없는 일부 산유국들은 에너지 협력을 통해 중국을 미국을 대신하는 ‘정치자산’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해양석유(CNOOC)는 9일 아프리카 산유대국인 나이지리아의 석유업체 사우스애틀랜틱석유(SAP)가 보유한 악포(Akpo) 유전의 지분 45%를 22억 7,000만 달러에 매입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CNOOC가 아시아 이외 지역에서 유전을 매입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번 인수는 지난해 미국 정계의 노골적인 방해로 미국 정유업체 유노칼을 인수하는 데 실패한 이후 이뤄진 것이어서 CNOOC에게 의미가 적지 않다.
전날에는 볼리비아와 천연가스를 공동 개발하는데 사실상 합의했다. 중국을 방문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자가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에 매장량 세계 2위를 자랑하는 볼리비아 천연가스 개발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나의 대통령 당선이 미국에는 악몽일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반미감정을 드러낸 모랄레스 당선자가 첫 해외순방길인 중국에 에너지 협력을 요청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심지어 중국은 전 세계 에너지 사냥의 강력한 라이벌인 인도와도 손을 잡았다. AP통신은 10일 중국과 인도가 유전 발굴을 비롯한 에너지 개발, 생산, 저장, 연구 등 에너지 관련 모든 부분을 망라하는 5개 항목에 대한 협약을 맺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협약식은 12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찾는 마니 상카르 아이아르 인도 석유장관이 중국 방문 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들이는 공은 대단하다. 다르푸르 내전 당시 대량 학살 혐의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위기에 처했던 수단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주면서 한숨을 돌렸고 이후 중국과 급속히 밀착했다.
수단의 석유산업은 중국이 거의 독식하고 있다. 5일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이 케이프 베르데, 세네갈, 말리,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리비아 등 아프리카 6개국을 순방한다고 발표했다.
냉전시절 비동맹 외교의 한 축이었던 아프리카와 맺은 오랜 인연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 외교부장은 아프리카 순방으로 한해를 시작했는데 이 관행이 올해에도 계속된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은 중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워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불량국가’와 야합해서 인권과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아프리카의 석유를 싹쓸이하는 행태가 19세기 아프리카의 광물자원을 약탈한 유럽 열강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4년 수입량의 30%를 차지했던 아프리카 석유에 대한 비중을 2025년까지 45%로 늘릴 계획이다. 이념이냐 경제적 이권이냐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맞붙고 있는 아프리카, 중남미 쟁탈전이 어떻게 결판날지는 올해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