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강력히 경고했음에도 이란이 결국 10일 핵 시설 봉인을 뜯었다. 지난해 8월 이스파한 핵 시설 봉인 제거에 이어 5개월 만에 이뤄지는 것으로 2년 동안 중지됐던 핵 연구 활동을 재개한다는 이유에서다.
서방 국가들은 곧바로 “이란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며 “핵 연료 연구활동을 당장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핵 문제를 둘러싸고 이란과 서방 국가 사이의 갈등이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모하마드 사에디 이란 원자력에너지기구 부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핵 시설들에서 봉인을 제거하고 핵 연구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의 작업은 순전히 연구에 국한하며 그 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여 ‘핵 무기를 만들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는 서방 국가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란은 그 동안 우라늄 농축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으로서 당연히 갖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며 법적으로 문제 없음을 강조해 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에 보장된 권리를 시험해 보려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은 이번 핵 연구 재개가 우라늄 농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EU 외교안전정책 고위 대표 대변인인 크리스티나 갈라는 이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분명히 우라늄 농축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란 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추진 등 서방 국가들의 외교적 압박이 한층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갈라흐 대변인은 이 날 “안보리 회부도 여러 선택 중 하나”라고 말했고 숀 맥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도 “우리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동안 이란 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번번히 거절했던 러시아와 중국도 이번에는 미국과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이란 핵 협상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은 “18일로 예정된 이란과 유럽 3국(프랑스 영국 독일)의 협상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프랑크-발터 스타인미어 독일 외무장관은 “이란이 재앙 같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더 이상 이란과 핵 협상을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대변인도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유럽 3국은 12일 베를린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갖을 계획이다. 물론 아직까지 실낱 같은 희망은 남아 있다. 특히 러시아의 중재안에 대한 이란의 반응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주 “이란 핵 연료를 이란이 아닌 러시아에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럴 경우 이란은 평화적 핵 활동에 필요한 핵 연료를 확보할 수 있고 서방 국가들의 걱정처럼 핵 무기 제조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란이나 서방국가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라는 것이다.
BBC는 이란이 “러시아의 중재안은 결함이 많다”며 시큰둥한 상태지만 완전히 거절한 상태는 아니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지난 주말 이란에 협상단을 보내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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