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장관 임명에 대해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반론을 제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에 해당하는 장관 임명권 행사에 대해 야당이 아닌 여당이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장관 임명에 관한 국회 청문회 제도가 신설됐고 장관 임명이 정치적 행위라는 점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민주적 토론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된 유시민 의원이 자격 미달 또는 전혀 엉뚱한 인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당의 청와대에 대한 반발은 심상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장관 임명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형편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은 한마디로 대통령이 지지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대통령이 과반수의 국민 지지를 받는다고 한다면 여당에서 저토록 청와대에 항명을 할 수 있을까.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은 사사건건 야당과 반대 세력의 공격을 받아 쉽게 성사되는 일이 없다.
현대 정치에서 대통령의 지지도는 단순히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 점수가 아니다. 지지도는 대통령이 이루고 싶은 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정치적 자산이다. 대통령은 평소에 통합과 화합적인 이슈로 전반적인 국민의 지지를 획득한 뒤, 높은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인기가 없지만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정책을 수행하는 정치적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지금 지지도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여론 조사를 해 보면 보수층의 대다수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고 있고, 진보층은 대체로 대통령 지지와 반대가 엇비슷하게 분포하고 있다. 심지어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도 상당수가 대통령 지지를 유보하고 있다. 이 정도의 지지도 상황이 여당이 청와대에 반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엊그제 이해찬 총리는 TV 토론에 출연해서 참여 정부는 여론에 연연해 하지 않고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청와대 인사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러나 이전의 권위적인 독재 정권들도 유사한 주장을 하곤 했다. 과거에는 실제로 여론을 거슬러 가며 정책을 강제할 수 있는 독재라도 있었다. 지금은 독재는 물러가고 민주가 만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정치 권력이 자칫 빠지기 쉬운 권위와 독재의 유혹을 물리치고 국민에게 자유와 권리를 찾아 주는 공헌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민에게 돌려준 권리를 대통령 지지 쪽으로 유도하는 지지도 관리에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정부가 독재 정권과 같이 국민의 지지가 없어도 할 일은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도 위기는 상당 부분 언론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시장 지배적 보수 언론은 물론 다루기 까다롭다. 일부 보수 신문은 정파성의 함정에 빠져 대통령을 지나치게 적대시하며 공격에 몰두하고 심지어 깔보고 비아냥거린다.
이런 신문들은 불공정 편파 보도로 전반적인 신뢰도 하락과 구독자 이탈을 경험하면서도 대통령을 공격함으로써 대통령 지지도 하락을 부채질한다.
대통령은 공격적인 보수 신문들을 불신하고 경계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개혁의 이름으로 손봐 줄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때로는 잘해 보자고 제의도 해 보지만 결국은 불신의 골을 좁히지 못하고 이내 냉랭한 적대 관계로 돌아선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 비판하듯, 대통령이 나쁜 언론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언론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일은 대통령에게 결코 정치적 이득을 주지 못한다. 대통령은 언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은 일부 신문의 무차별적인 공격 보도의 효과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보수 언론과의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언론의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과 싸우는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들은 쉽게 지지를 보낼 수가 없다.
언론은 비판하고 대통령은 통솔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언론의 비판을 적당히 수용하고 심지어 나쁜 언론까지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데 있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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