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을 둘러싸고 정국이 어수선하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공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구속력이 있는 청문회가 아닌 이상 유 의원의 복지부 장관 취임은 현실이 될 듯하다. 유 의원의 복지부 장관 내정은 빈사상태에 빠진 연금 개혁에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권 내에서 연금제도에 대한 이해가 가장 높고,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인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당의 반발과 국민의 차가운 시선을 생각해서라도 큼직한 성과가 필요하다. 만약 이 상황에서 ‘개혁’의 ‘개’자도 못 이룬다면, 국민적 실망은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유 의원의 복지부 장관 내정이 연금개혁에 새로운 동력이 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과 걱정이 앞선다. 왜일까? 이는 역설적이지만, 유 의원이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에서 보여준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 여권 내에서 널리 인정받는 전문성 때문이다.
●보험료 인상은 뒤로 미뤄
유 의원은 그 누구보다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잘 알고, 이를 앞장서 실천하려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유 의원을 타 정치인들과 구분 짓게 만드는 최대 덕목은 연금개혁의 정치적 의미를 꿰뚫고 있다는 데 있다.
연금개혁이 가져올 표 계산에 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애초 정부안의 두 가지 기둥, 즉 보험료 인상과 연금액의 인하 양자를 모두 추구하지 않았다. 제도 미성숙으로 수급자가 얼마 되지 않는 연금액의 인하는 정부안대로 추진하지만, 당장 모든 국민의 피부에 와 닿을 보험료의 인상은 공교롭게도 대선 뒤인 2008년에 다시 계산해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정부안대로 해도, 고작 기금고갈 시점만 20여 년 늦추는데 불과한 미완성의 개혁인데, 만약 유 의원의 주장대로 보험료 인상을 하염없이 뒤로 늦추면 그만큼 개혁의 효과는 반감되고 만다.
어차피 연금개혁이 현 세대보다는 국가의 장래 그리고 우리 아들 딸들을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면, 조금은 더 원칙적이고 우직할 필요가 있다. 너무 앞서서 표 계산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대통령마저 인정하는 유 의원의 전문성도 불안의 원천이다. 김근태 장관도 그랬지만, 현재 여권의 연금개혁론자들은 연금구조는 그대로 둔 채, 보험료를 인상해 수입을 늘리고 연금지출을 줄이면 개혁이 되는 것으로, 마치 다른 대안은 없는 것으로 단정을 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유 의원도 이러한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 있지 못한 듯하다.
이미 고령사회를 맞아 장기적 재정안정화는 물론 재정효율성이 높은 가운데 최저보장을 해주고, 고령자들의 근로를 유인할 수 있는 새로운 연금제도들이 스웨덴 등에서 창조적으로 설계되고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연금개혁 논의는 여전히 120년 전에 고안된 독일의 비스마르크형 연금제도의 틀 안에 갇혀 있다.
그리고 정부 안과 한나라당 안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유 의원의 전문성이 비스마르크형 연금제도에 대한 이해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유 의원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탁월한 식견이 구식 모형의 입법에 소진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20년전 독일 모델에 갇혀
유 의원의 복지부 장관 발탁에는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려는 노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지도자가 키워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유 의원이 진정한 차세대 지도자 감인지 판단해 볼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한 것 같다.
부디 열린 마음으로 정책적 합리성이 높은 새로운 개혁 대안을 마련하고 사회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길 바란다. 그래서 ‘낙점’이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는 차세대 지도자가 탄생하길 기대하는 바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