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유시민 의원 등의 장관 내정은 차세대 지도자 키우기”라고 밝힌 것을 놓고 “지금이 차세대나 대권을 운운할 때냐”는 냉소적인 비판이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다.
발언 당사자인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9일 논란의 확산에 부담스러웠던지 “차기 대권구도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장차 당과 한국정치를 이끌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일반론적인 얘기”라는 해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청와대의 축소 해석이 정치권의 구구한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한나라당이 “유 의원이 태자라도 된다는 말이냐”는 희화적인 비유로 비난한 것은 제쳐두더라도, 여당 내부에서조차 “대통령의 차세대 키우기는 이미 여러 차례 실패한 가설”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세대론은 어느 정권이든 집권 중반기가 되면 어김없이 나온 단골 메뉴였다.
‘제3후보’, ‘깜짝 놀랄 후보’ 등으로 표현만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이 자파 인물을 다시 세우고 싶은 욕심 차원에서, 또 유력한 주자를 견제해 권력누수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내놓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그런 구상의 허망함만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노태우 정권만 해도 민정계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박태준, 이종찬 의원을 대안으로 띄우다가 대세를 잡지 못하고 뜻을 접었다.
YS 역시 집권 3년차인 95년 10월 “차기대선 때 국민이 깜짝 놀랄 세대교체로 젊은 후보를 내세울 것”이라고 호언하는 등 대선직전까지 끊임없이 이회창 후보를 대신할 카드를 찾았다. YS는 이홍구, 이수성 전 총리와 젊은 후보를 자처한 이인제 의원 등을 지원했지만 이회창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대중 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제3후보론’이 묵직하게 떠올랐고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당대표 기용 등 굵직한 인사 때마다 설이 분분했지만 그야말로 설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정치사의 경험이 있기에 청와대의 ‘차세대 지도자 키우기론’에 대한 시선은 매우 차갑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차세대 지도자는 청와대가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능력과 됨됨이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장은 “전에는 대통령이 맘에 드는 정치인이 있어도 드러나지 않게 키웠는데 이번에는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나섰다”면서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낳았다”이라고 지적했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청와대를 진원지로 후계자 시비가 불거진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권력을 쥔 자가 특정 인물을 키운다는 발상은 더 이상 맞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지금은 특정 인물을 키울 때가 아니라 시대 흐름에 맞는 정치적 비전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정치인들은 이를 체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며 “수 십년 내려온 구시대 패러다임은 이제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