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에 변혁의 태풍이 불고 있다. 진원지는 지난달 만 39세의 ‘어린’나이로 지휘봉을 잡은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다.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운 그의 보수당이 개혁을 피할 수 없으리란 것은 예상된 일이었으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강도에 대해서는 당내 대부분 인사들조차 벙벙할 지경이다.
캐머런 신임 당수는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라며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연일 날리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캐머런 당수가 “보수당을 ‘재정립(repositioning)’하는 차원을 넘어 재규정(rebranding)’하려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당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 그의 첫 개혁 의제는 지난 1일 일면을 드러냈다. 이날자 영국 신문에는 “보수당은 대기업을 옹호하지 만은 않을 것이며 영국과 세계의 이익이라면 대기업에 맞서기도 할 것”이라는 캐머런 당수의 정책광고가 실렸다.
보수파의 성역이자 텃밭으로 간주돼 온 대기업에 칼날을 들이 댄 것이다. 캐머런 당수는 대기업의 어떤 면이 ‘맞서야 할’ 대상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당내 개혁파들은 “대기업이 사회에 보다 많은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환경 지구온난화 빈곤 여성권익 산업폐기물 분배 등 한결같이 좌파의 영역이었던 사회문제를 조목조목 지목하며 “영국이 경쟁력을 갖추는데 이것이 값비싼 비용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캐머런 당수는 4일에는 대형 소매업체인 ‘WH 스미스’를 직접 거론해 “‘초콜릿 오렌지’라는 패스트푸드를 팔아 영국인들을 비만에 빠뜨리는 이유가 뭐냐”며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이 발언이 “보수당은 대기업의 ‘마우스피스(mouthpiece)’가 아니다”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자 기업을 생산성 측면에서만 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같은 날 예비내각의 앨런 던컨 무역장관 대변인도 “토리(보수당의 애칭)는 대기업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실상 대처리즘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캐머런 당수는 앞서 빈곤퇴치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록 스타 밥 겔도프와 환경운동가 잭 골드스미스를 정책고문으로 영입했다.
캐머런 당수의 거침없는 개혁행보에 보수파들은 내심 불안감으로 속을 끓이고 있다. ‘중도’로의 급격한 쏠림이 당의 정체성을 흔들어 전통 보수 유권자마저 잃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다. 대기업들도 당 수뇌부의 반기업적 발언이 세제 및 기업제도 등 구체적 정책에서 어떤 모습으로 현실화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일 알코올 중독 문제로 당수직에서 자진 사퇴한 찰스 케네디 자유민주당 당수가 사실은 보수당의 변신에 초조해진 당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캐머런 효과’는 이미 영국 정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전문가들은 보수당이 내부의 파열음 없이 개혁의제를 어떻게 정책으로 전환하느냐에 따라 캐머런 당수에 대한 ‘짝뚱 블레어’ 논란이 불식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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