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으로 돌아간다. 아울러 동시대를 호흡한다. 이 두 가지가 올해 서울시향의 기본 방향이다. 12월까지 4회에 걸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가 전자라면, 재독 작곡가 진은숙(45)을 상임작곡가로 영입한 것은 후자에 속한다. 특히 상임작곡가 제도는 국내 교향악단으로는 처음 시행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작곡가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그의 작품을 포함해 현대음악을 만날 기회가 그만큼 많아지고 창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나 미국의 주요 오케스트라는 상임작곡가(혹은 상주작곡가, Composer in Residence)제도가 정착돼 있다. 유럽 오케스트라는 한 시즌 동안 특정 작곡가를 초빙해 그의 작품을 집중 연주하고 신작을 위촉한다. 미국에서 상임작곡가는 한 시즌이 아닌 5~10년 동안 음악 프로그램을 공동 기획하고 현대음악을 담당하는 예술감독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년 전 부천필이 상임작곡가를 찾다가 실패했다.
“우리나라에 전업 작곡가가 없기 때문일 거에요. 대부분 작곡가는 생계를 위해 대학에서 가르치는 등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오케스트라를 병행하기 어렵거든요. 저는 전업 작곡가이고 또 서울시향이 제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주셔서 같이 일할 수 있게 됐어요.”
9일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서울시향의 올해 계획 발표회장에 나온 진은숙은 상임작곡가로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아 보였다. 그는 앞으로 3년간 상임작곡가로 일한다.
“지난해 3월, 정명훈 선생님으로부터 상임작곡가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무척 기뻤습니다. 영광입니다.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20년 째 활동하다보니 한국에서 뭔가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거든요. 상임작곡가로서 제 역할은 미국 식에 가까워요. 연주 프로그램 구성, 젊은 작곡가를 위한 강의와 워크숍,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할 겁니다. 현대음악 소개도 학구적이고 어려운 독일 작품에 쏠린 국내 관행에서 벗어나 세계의 다양한 현대음악으로 넓히고, 한국 초연 또는 아시아 초연 작품과 고전ㆍ낭만음악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제 작품 연주보다는 한국 음악계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01, 2002년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의 상임작곡가로 활동한 그는 그때 위촉받아 쓴 바이올린협주곡으로 2004년 ‘작곡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을 받았다. 베를린 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세계의 차세대 작곡가 5인’ 중 한 명으로 일찌감치 그를 지목했다.
정명훈은 “진은숙씨가 세계적 작곡가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며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을 나타냈다.
“연주자나 지휘자는 작곡가의 (음악을 전달하는) ‘메신저’입니다. 음악 발달의 가장 큰 책임은 작곡가에게 있지요. 저는 처음 진은숙씨의 작품과 현대음악 소개 정도를 기대했는데, 진은숙씨가 음악교육과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을 보여 더욱 반가웠죠.”
진은숙은 여기 저기서 작품 위촉을 받는 작곡가다. 요즘은 2007년 뮌헨에서 초연할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매달리고 있다. 또 다른 작품 ‘거울 뒤의 앨리스’는 2011년 초연 예정이다. “서울시향을 위한 작품도 물론 쓸 겁니다. 정명훈 선생님은 빨리 작품 내놓으라고 독촉하시지만, 오페라 쓰느라 당장은 힘들어요.”
올해 상임작곡가로서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세 가지다. 20세기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아르스 노바 Ⅰ, Ⅱ’(4월, 10월), 그리고 정명훈의 베토벤 사이클과 맞물려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재해석한 베토벤으로 베토벤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는 ‘색다른 베토벤’(Different Beethoven, 10월)이 그것이다.
‘색다른 베토벤’은 베토벤 작품을 패러디 하거나 베토벤을 모티프로 한 실내악 공연으로, 아르헨티나 작곡가 카겔의 베토벤 영화 ‘루드비히 반’, 현대의 파괴된 전원을 노래하는 호주 작곡가 브렛 딘의 ‘전원’ 교향곡이 포함된다. 베토벤의 방과 똑같이 꾸민 공간에서 음악과 전시, 퍼포먼스, 설치미술이 함께 진행되는 어린이를 위한 베토벤 프로젝트도 이 때 선보일 예정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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