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인 2일 오후 전남 장성의 백양사. 눈 덮인 고즈넉한 산사(山寺)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상념에 잠긴 채 인적 없는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표정은 진지했고, 가끔씩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의 3박4일간 산사 생활을 지켜본 한 인사는 “예전의 활달함은 간 데 없고 뭔가 생각을 잔뜩 안고 있는 진중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각 국회의 우리당 회의실. 김근태 전 복지부장관은 당 복귀를 신고하는 기자간담회를 했다. 내내 밝은 표정으로 거수 경례를 하는 등 전에 없이 경쾌한 분위기였다. 그는 “김근태와 함께 전당대회에서 정치적 대변화를 일으키자”며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자신에 찬 어조로 강조했다.
새해 들어 열린우리당 당권 레이스에 나선 두 사람의 달라진 스타일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몽골기병’과 같은 순발력과 결단력이 트레이드 마크인 정 전장관은 신중과 겸손의 행보를 하고 있고, 우유부단한 햄릿형 리더라는 일각의 비판을 받기도 했던 김 전장관은 단호함, 과감함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정 전장관은 6일 당 복귀 첫날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내내 신중했다. 그의 화두는 하심(下心), 즉 겸손이었다. 그는 “우리당이 초심을 잊은 것 같고, 또 하심을 잊은 것 같다”며 “겸손, 겸양의 마음을 잊고 국민 눈에 오만하게 비친 것은 아닌가 자성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전당대회 출마여부에 대해서도 “여러 사람의 말을 신중하게 경청하며 고민 중”이라고만 했다. 예전 같았으면 출마선언과 함께 “나와 함께 가자”고 목청을 높였을 그였다.
그는 8~9일 부산ㆍ경남 방문길에서도 “여당이 왜 이렇게 됐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한 측근은 “까딱하면 손에서 떨어져 깨져버리는 유리 공 같은 남북 문제를 18개월 동안 다루면서 스스로 신중함을 체득한 것 같다”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11일 출마를 선언한다.
김 전장관의 변화도 극적이다. 신중함의 대명사인 그가 단호한 직설 화법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 김 전 장관은 3일 부산에서 “정 전장관이 당 의장에 당선되면 ‘이대로 가자’는 것으로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공세적 자세를 취했다. 5일 전남 여수에선 “저 김근태가 의장이 돼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연일 ‘견위수명(見危授命ㆍ위험을 보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전 장관은 2일 당 복귀 회견에서 ‘DJ식이 아닌 YS식 화법으로 말할 것’, ‘달라졌다는 모습을 각인시키도록 할 것’이라고 쓰인 메모를 회견문과 함께 갖고 오기도 했다. 한 측근은 “전략적 고려도 있지만, 장관 스스로 변화의지가 무척 강하다”고 전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변해야 하고, 그 변화를 먼저 실천하겠다는 인식이라는 얘기다. 두 사람의 상반된 스타일 변화가 당권레이스와, 멀게는 차기 대선후보 대선후보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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