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의 생애를 살다 갔지만, 정작 그가 화가로 활동한 시간은 10년밖에 안 된다. 그 10년 동안 반 고흐는 900여 점의 유화와 1,000여 점의 데생, 그리고 8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살아 생전 그의 그림은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끝없는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자신의 귀를 자르고 마침내 권총자살한 그에게 세상이 내린 평가는 ‘광기에 사로잡힌, 탁월하지만 황폐한 정신 이상자’라는 일방적 소견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소견을 누구보다 강하게 뒷받침한 사람은 오랜 시간 그를 후원했던 동생 테오와 고흐가 그린 초상화로 유명한 의사 가세 박사 등이었다. 요컨대 고흐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회에 의해 확인사살 당한 셈이다.
고흐가 죽은 뒤 50여 년이 지난 1947년 1월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관에서 반 고흐의 전시회가 개최된다. 고흐의 그림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던 무렵이었는데, 그때 프랑스 로데즈 정신병원에서 추위와 배고픔, 격리와 전기충격의 고통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던 한 예술가가 기진한 몸을 이끌고 반 고흐의 전시관을 찾는다. 어느 주간지에서 한 정신과 의사가 반 고흐를 정신병자로 진단한 ‘반 고흐의 악마성’이란 책을 출간했다는 기사를 읽고 발끈했던 그는 전시회에 다녀오자마자 가히 미친 듯한 열광 상태에서 책 한 권을 단번에 써낸다.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조동신 옮김, 숲)라는 제목으로 3년 전 우리나라에도 번역됐던 그 책의 지은이는 소위 ‘잔혹극’이론으로 유명한 연극연출가이자 배우이자, 무엇보다 시인인 앙토냉 아르토이다.
한국 번역본엔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란 문구가 부제로 딸려있지만, 사실 이 부제가 더 원제목에 가깝다. 전기쇼크와 피해망상의 고통을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겪었던 아르토는 고흐의 그림을 다시 보며 고흐가 가지고 있는 명징한 눈과 소용돌이치는 내면의 열기를 정확히 간파함으로써 그 강렬한 내면의 힘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건 아르토가 평생토록 추구했던 예술적 실천의 한 결정이었다. 아르토에 의하면 반 고흐는 뛰어난 예술의 현자이자 “사실들의 즉각적이고 명백한 실재성보다 멀리, 무한하고 위험할 정도로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최고의 명석함을 지닌 사람들 중 하나”였다. 아르토에게 고흐의 그림은 ‘생생한 살덩이’에서 분출한 ‘알갱이 하나 하나를 모두 드러낼 분자들의 유성 폭격’으로써 ‘진정한 문화란, 열광에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는 아르토 자신의 예술론을 강렬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아르토의 이런 비유는 과도한 시적 비약과 사유의 응축으로 독특한 이물감을 던져주는 아르토 자신의 글에도 정확히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요령부득한 이단아로 통했던 아르토의 글은 프랑스어의 일반적인 문맥과 전통에서 비껴나 자기만의 독특한 뉘앙스와 물질성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를 알기 위해선 1938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연극과 그 이중(Theatre et son Double)’을 필독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잔혹연극론’(박형섭 옮김, 현대미학사)으로 번역된 이 책은 연극과 시를 통틀어 아르토의 예술세계 전반을 특유의 휘몰아치는 듯한 문장과 광기 어린 사유로 드러낸다. 흔히 연극이론서로 분류되고 취급되지만, ‘관객을 마술적인 최면상태로 몰아넣는 것’이 연극의 신성한 목표라는 그의 말마따나 이 책은 ‘독자를 마술적인 최면상태로 몰아넣는’ 듯한 광포한 시적 에너지와 사유의 역동성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이 책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비단 연극무대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아르트가 평생토록 지향했던 신성한 제의로서의 삶, 내면의 강렬한 에너지를 통한 궁극의 영원성을 체험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존재의 한계 영역을 무한히 넓히며 팽창하는 듯한 아르토의 문장에 흠뻑 취해보시길 권한다.
그런데, 아르토가 말한 연극에서의 잔혹성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과 함께 20세기 전위연극의 핵심이론으로 자리잡은 잔혹극은 그 어감이 지니고 있는 선입견 탓인지 오랫동안 올바른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컨대 잔혹극하면 살인 및 가학행위 등 잔악한 행동들이 무대를 가득 메우는 연극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을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르토의 잔혹개념이 가지고 있는 핵심을 간과하고 표면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단순한 엽기 취미나 선정성만을 떠올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아르토는 ‘잔혹연극(theatre de la cruaute)’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잔혹’이라고 말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곧 이 단어가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나에게 있어서 ‘잔혹연극’은 난해하고 잔혹스런 연극을 뜻한다…(중략) 잔인하게 칼로 자른 코나 귀들을 주머니에 담아 우편으로 부치는 행위를 실행하는 그러한 잔혹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잔혹성이란 사물들이 우리를 향해 끼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며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는 아직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의 여지가 남아 있다. 연극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아르토가 가장 먼저 비판한 건 고정된 서사의 틀에 갇혀 배우를 이미 씌어진 대본이나 앵무새처럼 지껄이게 만드는 고전연극이었다. 그는 기존의 연극이 재연하는 텍스트의 동어반복이 연극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인체의 활기를 사상시킨다고 생각했다. ‘걸작품과 결별하기’라는 장에서 아르토는 “이미 표현된 말은 모두 죽은 것이다. 말이란 발화되는 순간에만 영향력을 가진다”고 갈파한다. 아르토의 이런 통찰은 소위 육체언어로 표현되는 연극의 발생학적인 본질과 성질을 매순간 무대에서 되살려내려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러기 위해선 감정을 일으키는 몸 조직의 장소들을 감각적으로 자각하는 신체 훈련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신체내부의 마술적인 고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명의 새로운 인간이 무대 위에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연기방법은 어떤 특정한 모델에 자아를 대입하는 고전적 연기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자 신체활동으로서의 연극을 이성적 논리와 고정된 언어의 메커니즘에 귀속시켰던 오랜 서양연극의 인습을 깨뜨리는 도발로 통했다. 아르토에게 연극은 삶을 언어적으로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삶을 약동하는 에너지덩어리로서의 실물로 환원하는 무엇보다 육체적인 자아발현의 도구였던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근대이성의 현란하게 조작된 빛 아래에서 사장되어가는 인간의 본질적 언어를 육체라는 필터로 되살려내는 일이기도 하다.
아르토의 모든 글들은 그렇듯 육체라는 무덤에 갇힌 영혼의 울림으로 기능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인용하는 글은 오랜 육체적 발산에의 충동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그가 반세기를 앞서 살다간 한 ‘영혼의 동지’를 기리며 범속한 이기주의와 비열한 소심증 환자들이 거짓과 모반을 일삼는 세상 전반에 대한 성토이자 그 자신의 예술적 신념에서 자연 발생한 절규로 읽힌다. 그 절규는, 듣기에 심히 고통스럽고 혼란스럽지만, 듣지 않으면 마음이 먼저 부대껴 저 혼자 귀를 열고 세상의 오랜 인습 속에 누더기가 되어가는 이 몸의 부실한 공명통을 매섭게 두드려댄다. 그 소리가 설령 소음에 불과할지라도, 거짓을 말하느니 괴성을 지르는 게 더 인간답지 않겠는가.
시인 nietz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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