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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피그말리온과 플라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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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피그말리온과 플라세보

입력
2006.01.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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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피그말리온 효과’란 말이 여기저기서 사람들 입에 회자된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신년사에서 “월드컵과 외환위기 극복에서 경험했듯이 올해 모두가 정성을 다하고 간절히 소망하면 어떠한 꿈과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일화에서 비롯된 이 효과를 인용하면서부터다. 뼈대만 간추리면 주변 여인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키프러스의 왕 피그말리온이 상아로 이상적 여인상을 만든 후 이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간절히 기도해 생명을 가진 아내로 맞게 됐다는 내용이다. 심리학적으로 피그말리온 효과는 ‘자수적 예언(自遂的 豫言ㆍself-fulfilling prophercy)’으로 정의된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종종 혼동되는 것으로, 의료계 용어인 ‘플라세보 효과’가 있다. 어떤 약 속에 특정 유효성분이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해 환자에게 투여하면 실제로 그런 효과를 거둔다는 이른바 ‘위약(僞藥) 효과’다. 소화제를 수면제로, 혹은 증류수를 해열제로 위장해 투여해도 잠을 잘 자고 열도 내린다는 얘기다. 냉동차에서 일하던 사람이 문이 닫혀 갇힌 후, 얼어죽는 과정의 고통스런 기록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됐지만, 마침 그 냉동차는 고장이 나서 내부온도가 13도였고 산소도 충분했다는 일화도 이 효과의 하나로 인용된다.

▦두 효과의 차이는 소망과 기대가 대상과 본인 중 어느 쪽을 통해 나타나느냐, 또는 의지적 추구냐 무의지적 수용이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새해를 전후해 발표된 고무적인 경제지표에 들떠 있는 정권으로선 국민들이 플라세보 효과에 젖어들기를 더욱 바랄 것이다. 환율과 유가 등이 복병이긴 하지만 소비ㆍ투자ㆍ생산ㆍ수출 동향으로 드러나는 봄 기운을 보면서 양극화의 그늘에 있는 서민층이 자신들도 조만간 경기회복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갖는 것이 나쁜 일도 아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은 국민들 입장에서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간절한 소망을 갖든지, 플레세보 효과처럼 곧 잘 될 것이라는 최면에 빠지든지, 다 좋은 일이다. 대통령도 새해엔 현장을 자주 찾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기업들에게 아쉬운 소리도 하겠다고 말해 “이젠 정말 뭔가 달라지는 모양이다”는 기대를 잔뜩 돋웠다. 그러나 지금 여당과 청와대, 정권과 사학측이 벌이는 일은 요상하다 못해 징그럽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새해 벽두부터 국민 정신을 이토록 사납게 하는 나라가 몇이나 될는지….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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