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논제 분석
문제는 5개 제시문에 담긴 ‘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켜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되, 첫머리에 자신의 주장을 반영한 제목을 달라고 한다.
이는 연세대 학풍에 어울리는 자유로운 감각, 사회적 리더로서 필요한 비판적 사고력, 인생에 대한 성찰력, 문화적 소양 등을 묻는 문제이다. 연세대 지원자는 수능성적이나 ‘지적인 능력’이 우수하다. 그래서 고차원적인 다른 측면을 엿보려 한다. ‘뒷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 ‘자유로우면서 독창적인 생각’ ‘정신적인 원숙함’을 비중있게 평가하려 한다. 실로 교양, 예술적 감각, 인생에 대한 통찰력, 원숙한 태도는 값진 인생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에, 논제는 프랑스 논술시험을 연상케하는 격조높은 문제이다.
나. 제시문 분석
조선후기 이명한의 글 (가)는 섣달 그믐(12월 끝 날)밤의 일들을 나열하면서 늙어가는 것에 대한 슬픈 감정을 나타낸다.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 것에 대하여 그대(수험생)들의 말을 듣고 싶다. 도입부이다. 성경을 인용한 (나)는, 생전의 성과를 다른 사람(후손)이 누리니 내가 살아서 한 고생이 헛되다는 다소 심술궂은 내용이다. 제시문 (다)는 노인의 성격을 젊은이와 대조시키면서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갖고있지 않은 것을 욕망하기에 살 날이 짧은 노인들이 삶을 매우 사랑한다. (라)는 르네상스 시기의 티치아노가 그린 유,청,노년기의 그림이다. 크게 그려진 젊은이는 이성에 대한 관심(욕망)이 큼을, 죽음을 앞둔 왜소한 늙은이는 축소된 삶의 비중을 암시한다. (마)는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이라는 예이츠의 시이다. 시에서 대리석은 노년의 삶이고 세파에 견디는 강고함, 빛나는 지혜, 행동력의 결핍을 상징한다. 철(지혜)이 들기 때문에, 아름다운 여인의 말에서도 허튼 소리는 쉽게 구분된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은 행동력이 없어서 미인을 바라만 본다. 이것이 삶의 진정한 모습이고 바램이었던가? 노년의 삶은 꿈에 지쳤지만 그럼에도 젊었을 때 그녀를 만났더라면 하고 꿈꾸면서 늙어간다. (마)는 출제자의 입장이고 5개 제시문의 결론(한 예시답안)으로 볼 수 있다. 늙으면 욕망을 실현하지 못한다. 체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생,욕망에 대한 노년의 태도이다.
(나),(다)는 논술의 방향(일반적 통념과는 다르게 생각하라)을 알려주면서 학생들의 사고력을 자극한다. (다),(마)로 보건대 ‘욕망’은 재물욕같은 좁은 의미의 욕심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삶에 대한) 욕망이다. (가),(마)는 출제자의 자문자답이다.
다. 답안 작성
사랑과 우정을 연관시켜 제목을 단다면 “사랑은 일시적이고 우정은 영원하다” “동성간에는 우정, 이성간에는 사랑”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이는 ‘세월이 흘러감’과 ‘욕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커지는 욕망” “늙으면서 줄어드는 욕망” “세월이 흘러감과 욕망은 무관하다” 등등. 논제로서 성선설․성악설이 모두 가능하듯이 ‘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키고 논거를 갖추어 설득력만 있으면 다양하고 상반되는 여러 제목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논지에서 욕망을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파악하면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 ‘나이듦’에 따라 욕망의 질이 변화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순수한 사고력이나 관찰․분석만으로도 답안을 작성할 수 있다.
연대 논술은 ‘뒷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을 묻는 문제이다. 따라서 좋은 답안이 되려면 첫째 나이듦(늙음)에 관한 지배적 통념(doxa, ideologie)을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측면을 동시에 보며, 균형잡힌 태도를 잃지 않고, 편협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둘째 자유로우며 창의적으로 생각한다. 논제처럼 주변의 일상을 심도깊게 분석하려면 열린 마음과 자유로운 태도가 필수적이다. 이는 글의 내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제목을 학생이 적으라는 것 자체가 이런 맥락이다.
예컨대 “늙을수록 욕망을 실현하기는 힘들어진다”는 제목 아래 제시문을 분석한다. 늙음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 다음 자신의 꿈(또는 아름다운 늙음)을 위하여 젊었을 때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한다고 적는다. 제시문과 자신의 생각을 유기적으로 구성한다. 이 경우 “겨울이 오기전에 수확하려면…” 시적인 제목도 가능할 것이다.
장희병 우민OK논구술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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